E. P. Sanders 샌더스 & 새관점학파


E. P. Sanders 샌더스 & 새관점학파

 

16세기 교회개혁 이래, 바울 신학연구에 관점’ (James Dunn 용어)만큼 영향을 미친 것은 없다  그리고 H. Maccoby (1991: Paul and Hellenism) E.P. Sanders 관점을 위한 길을 닦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개신교 학자들이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우월함을 증명할 , 바울이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비판했다고 마틴 루터의 방식을 따라 바울 당시의 유대교에 대해 오해했다고 본다. 이들 일부는 바울이 유대교적인 성향을 보이고, 유대교를 율법종교 (legalistic religion) 간주하는 것은 그가 (헬라 사상과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정통 (orthodox) 유대교를 오해하고 무시해 버린 결과라고 본다.

 

 

샌더스의 관점과 언약적 율법주의

 

특별히 W. Davies 영향을 받은 E.P. Sanders 1977 ‘Paul and Palestinian Judaism’라는 책으로 논쟁에 불을 붙였다. 1977년의 작품 ‘Paul and Palestinian Judaism’ 샌더스가 듀크 대학 교수로 있을 것이다.

 

그는 주전 200-주후 200년경의 팔레스틴 유대교의 패턴 (pattern) 연구하여 기독교의 패턴과 비교했다. 그는 바울이 유대교를 행위구원의 율법종교로 이해했다고 보는 특별히 독일의 (루터파) 학자들 (F. Weber, E. Schürer, W. Bousset, R. Bultmann, E. Käsemann, H. Hübner )에게서 셈족주의 (Anti-Semitism) 경향을 발견했다. 

 

샌더스는 바울 신학의 틀에서 유대교를 바라보지 않고 유대교를 바라본 결과, 바울 당시의 팔레스틴 유대교는 언약적 율법주의’ (covenantal nomism)라고 정의내렸다.

 

언약적 율법주의 내포하고 있는 구조 혹은 패턴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은혜로 선택했고,

(2) 이스라엘이 구원의 언약에 들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고,

(3) 율법은 하나님의 선택을 지탱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4) 이스라엘은 율법에 순종해야 했고,

(5) 하나님은 순종에는 (reward) 불순종에는 벌을 주시고,

(6) 율법을 지키지 못할 임하는 벌을 면하기 위해서 율법은 속죄 (atonement) 제사와 희생이라는 수단을 제공하고,

(7) 속죄 (atonement) 언약 관계를 지속-회복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8) 순종과 자비에 의해서 언약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종국에 구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오직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을 부인할 경우에만 언약 공동체에서 제외된다. 그러므로 샌더스에 의하면, 바울은 이런 (올바른) 유대교를 오해하여 율법을 지켜서 공로를 쌓고 결국 의롭게 되는 율법종교로 잘못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샌더스가 붙인 언약적 율법주의’ (혹은 언약적 신율주의, covenantal nomism)에서 ‘nomism’이라는 말에서 ‘ligalism’ 부정적인 뉘앙스를 조금이나마 극복하려는 노력을 있다. 샌더스는 언약적 율법주의와 개신교 학자들이 묘사하는 유대주의의 구원론 사이에 거의 유사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샌더스에 의하면, 바울이 유대주의를 포기한 것은, 새로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은 무언가 (something better) 발견했기 때문이지, 율법주의적 경건 (nomistic piety) 열등함 때문은 아니었다. 바울이 거부하면서 공격한 율법의 행위’ (works of law) 구원과 의를 획득하기 위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할례와 음식법 같은 것으로서 이방인 선교시에 기독교가 유대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있는 것들이었다. 바울의 유대주의 비판은 유대주의의 율법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이전 종교에 대한 종막이었다. 바울이 유대교를 바라 가장 문제는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바울이 율법의 행위 (works of law) 비판한 것은 율법주의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잘못된 정의였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 하나님의 백성을 정의하는 표시 (defining mark)이다.

 

참고로 샌더스 보다 1 후인 1978년에 출판한 (The paul of history and the apostle of faith, TynBul, 61-88)에서 N.T. Wright, 바울이 비판한 것은 유대교의 행위로 인한 칭의라는 잘못된 견해가 아니라, 유대 민족적 (Jewish national righteousness)였다. 아브라함의 육신적인 후손이라는 사실, 그리고 율법을 가지고 잇다는 사실만으로 언약 백성이며 구원의 특권을 보장받고 있다는 잘못된 관념을 바울이 비판했다는 것이다. 샌더스의 책을 거의 의존하지 않고도 아주 유사함 주장을 펼친 N.T. Wright 의하면, 루터와는 반대로 바울은 이신칭의로서 유대인의 민족적인 자만’ (Jewish national pride) 질타했지, 행위 구원-도덕적 자기 의존 (moralistic self-reliance) 표적으로 삼지 않았다. 샌더스에 의하면, 예수님과 바울에 의해 공격을 받은 유대주의는, 비록 몇몇 유대인 개인에게는 그것이 올바른 사실적 묘사이지만, 1세기 팔레스틴 정확한 유대교의 유형 (type)이나 페턴 (pattern) 아니다. 오히려 언약적 율법주의가 주후 70 예루살렘 멸망 이전의 팔레스틴 유대교의 모습이다.

 

 

- 고신대 송영목 교수님의 바울신학에서 발췌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