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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교회의 본질]_교회의 조직체적인 면과 유기체적인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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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

교회의 조직체적인 면과 유기체적인 면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5-16)

 

▣ 교회의 두 가지 면이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교회

교회에는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보이는 면은 우리의 육신에 해당되고 보이지 않는 면은 우리의 영혼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육신과 영혼이 하나로 연합을 해야 산 존재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물론 영혼만 가지고도 인격체로서는 충분히 살아 있는 인격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영혼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데 그 영혼은 무색무취하고 아무런 특색이 없는 사물이 아니고 인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영혼자체가 인격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찬송도 부르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영혼이 육체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닙니다. 교회가 마치 그와 같습니다. 교회에는 육체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고 영혼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는데 영혼은 영혼대로 아름답고 건전하고 튼튼해야 하고, 육체는 육체대로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게 될 때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교회는 그렇게 아름답게 지상에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육체에 해당하는 부분, 즉 눈에 보이는 부분을 우리는 조직체로서의 교회라 부르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 즉 영혼과 같은 부분을 유기체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를 유기체적인 교회, 혹은 조직체적인 교회라고 부르는데 이는 교회를 이쪽에서 보면 유기체적인 면이 있고, 또 다른 쪽에서 보면 조직체적인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조직체로서의 교회를 지나치게 강조한 경우

두 가지가 하나가 되지 아니한 교회는 온전치 못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조직체로서의 교회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곳은 로마천주교입니다. 로마천주교는 교회의 제도, 특별히 성직제도 속에 교회의 본질이 있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제도, 그 제도 속에서도 성직제도가 교회의 핵심 입니다. 교회의 성직제도가 교회를 이루어가는 근본적인 사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직 제도를 굳게 세우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직제도는 성직자의 계급제도를 말합니다. 신부, 주임신부, 주교, 대주교, 추기경이 있고, 가장 위에 교황이 있는 성직자의 계급제도를 말합니다. 성직제도의 꽃은 교황입니다.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 마치 그리스도의 모든 권세를 가진 존재인 것처럼 행세합니다.

 

▣ 성직제도의 내용

이것은 제도적인 교회의 제도적인 면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성직제도가 은혜를 소유하고 있고 은혜를 나눠 줍니다. 즉 성직제도 자체가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사죄를 선언하기도 하며, 대신하여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성직제도란 은혜를 성직자가 가지고 있고 은혜를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권한의 가장 핵심부에는 교황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이 성경을 해석하고, 교황이 성령의 은혜를 나누어 주고, 교황이 하늘의 열쇠를 쥐고 그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직제도이며, 그것이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제도를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흔들릴 수 없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이것을 허물면 교회가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제도적인 면, 조직체로서의 모습을 극대화 시켜 나간 것입니다.

 

▣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지나치게 강조한 경우

이것은 제도적인 교회의 제도적인 면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것입니다. 성직제도가 은혜를 소유하고 있고 은혜를 나눠 줍니다. 즉 성직제도 자체가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신부가 사죄를 선언하기도 하며, 대신하여 기도를 올리기도 합니다. 성직제도란 은혜를 성직자가 가지고 있고 은혜를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권한의 가장 핵심부에는 교황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황이 성경을 해석하고, 교황이 성령의 은혜를 나누어 주고, 교황이 하늘의 열쇠를 쥐고 그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직제도이며, 그것이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제도를 지키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흔들릴 수 없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이것을 허물면 교회가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제도적인 면, 조직체로서의 모습을 극대화 시켜 나간 것입니다.

 

▣ 유기체로서의 교회 - 성도의 교통

유기체로서의 면을 극대화 시켜 나아간 것은 퀘이커 교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미국이 독립하기 이전부터 초창기에 미국에 아주 많이 퍼져있었던 한 교단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퀘이커 교도라고 하는 사람들 입니다. 퀘이커 교도는 성직제도가 없어요. 퀘이커 교도에는 목사가 없고 평신도만 있습니다. 설교자가 따로 존재하지 아니하고 모여 예배를 드리다가 황홀경에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성령의 은혜를 입었다 하면 일어나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한 교회를 이루기는 하지만 조직화시켜 나가는 면에서는 최소화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로지 하늘로부터 내리는 은혜와 그 은혜로 말미암아 행하는 것들을 교회의 본질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느 한쪽만 있는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마치 사람이 영혼과 육체가 하나인 것처럼 조직체로서의 모습과 유기체로서의 모습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기체로서의 모습과 조직체로서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까?

 

▣ 유기체로서의 교회 - 성령의 은사

최근 유기체의 모습을 조직화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기체로서의 모습은 조직화해서는 안 됩니다. 즉 소위 은사 발견 프로그램을 통해서 너는 무슨 은사, 너는 무슨 은사가 있다고 확인해 주고, 그 은사를 따라서 교회 조직을 만들어 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기체의 모습이 아닙니다. 유기체의 모습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교회의 제도가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는 제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각 사람에게 주시는 은혜의 분량대로, 자신이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자발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통이 참되게 이루어지는 곳에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 속에 각자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섬기는 은사의 섬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성령의 역사 속에, 성령의 은사를 입은 사람들이 각자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자신이 해야 될 일들을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아 그 일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참된 성도의 교통과,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의 분량대로 섬기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살아있는 역사를 제도화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 유기체적인 면을 제도화하는 위험

그런데 우리는 세월이 흐를수록 모든 것을 제도화 하려고 합니다. 전에는 연약하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있으면 성령께서 자기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느끼고 자기가 가진 쌀 한 되박이라도 몰래 가져다주었습니다. 또 교회의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내가 감당해야지 하는 마음을 갖고 기도하면서 남이 모르게 그 일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제도화 해버리고 나면 다음부터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마음속에 역사하실 때에도 그것을 제도 쪽으로 모두 돌려 버리게 됩니다. 즉 구제할 때 교회 조직 속에 구제부를 만들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제부가 있으니 구제부가 해야지 하게 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아예 차단하는 것이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교회에 요청하여 제도화하려고 하면서 무조건 건의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을 감동시키면 그 사람은 나는 참 부족하지만 그 일을 제가 하겠습니다. 하면서 그 일을 묵묵히 감당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자꾸 조직화해서 나아가는 것은 교회가 경직되어 나아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교회는 유기체적인 모습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즉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에 대한 기대를 갖고, 성령께서 인도하실 때에는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일들이 있어야 합니다. 살아계신 성령께서 지금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들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와 인도하심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 놓고 목사님이 안 하시나, 장로님들이 안 해 주시나, 당회는 뭐하고 있나 하는 것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연약한 곳이 있고 부족한 곳이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대로 자기가 받은 은혜의 분량을 따라서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은사를 제도화하면 성령의 역사가 사라진다

모든 걸 제도화하게 되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기대가 점 점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교회의 조직에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 경우에는 교회가 원활하게 진행되어 나가지 못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 즉 성령의 은혜와 성령께서 필요한 대로 사람을 불러 사용하시는 역사에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즉 성령께서 너를 부르셨다 가 아니라, 성령께서 나를 부르셨다. 즉, 성령의 역사는 항상 나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너를 부르셨는데 너 안 가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를 부르셨으니 어려움도 무릅쓰고 희생하고, 혹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비워 그 일을 해야지. 이런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목사님이 시켜 하는 것도 아니고, 장로님이 시켜 하는 것도 아니고, 구역장이 시켜 하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시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시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시키시고 순종해 나아가는 가운데 성도를 감싸주고, 세워주면서 온 교회가 하나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 조직체로서의 교회의 섬김은 직분과 직무

그러나 지상에 있는 교회는 유기체적인 모습만으로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조직체가 있어야 합니다. 유기체와 조직체가 하나가 되어 균형과 조화 속에서 튼튼해질 때 교회의 본질적인 특성들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조직체적인 교회의 모습은 11절에 나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교회 안에는 조직이 있습니다. 이 조직은 직분을 통해서 표현되고, 또 직분을 통해서 섬김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목사는 목사대로, 장로는 장로대로, 집사는 집사대로 주어진 직분이 있고, 주어진 직분에 맞는 직무가 있습니다. 그 직무를 따라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해 나갈 때 교회가 든든하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 유기체로서의 섬김과 조직체로서의 섬김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그러므로 교회를 섬긴다고 할 때 양쪽의 섬김이 있습니다. 유기체적인 면에서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성령께서 주신 은혜의 분량대로 섬기게 되어 있고, 조직체적인 면에서는 직분과 직무를 따라서 그에게 주어진 일들을 감당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항상 은혜의 섬김과 직무의 섬김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직무의 섬김만 있거나 은혜의 섬김만 있으면 안 됩니다. 이 양자가 함께 존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직무는 주어졌는데 그 직무에 따른 섬김이 없다면 그 교회는 제대로 된 교회가 아닙니다. 장로님이 세워졌는데 장로님이 그 직무를 바로 하지 않으면 그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직무를 받은 사람들은 직무를 받을 때 하나님 앞에 서약했던 것을 변개치 않고 수행해야 합니다. 직분은 직무를 위한 것입니다. 직분에는 따르는 일, 섬김이 있습니다. 그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 일을 하지 않고 이름만 걸어놓는다면 교회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한편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성도를 위하여 어떤 감동이 있으면, 다른 누구에게 미룰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섬김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일에 순종해야 성령께서 더욱더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 교회의 거룩한 본질이 나타나려면

이렇게 유기체적인 면과 조직체적인 면이 함께 하나가 되어 온전한 교회를 이루게 될 때 교회의 거룩한 본질적인 특성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상에 눈에 보이는 지역교회, 즉 서대신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바로 이 유기체적인 면과 조직체적인 면이 균형과 조화 속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특성을 나타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제가 다음 시간에 다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것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 정말 영혼도 순결하고 아름답고, 육체도 건강하고 강건할 때, 그 사람이 참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교회도 조직체적인 모습과 유기체적인 모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역사할 때 정말 아름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서대신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시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 그룹토의

1. 교회의 두가지 면은 무엇인가?

 

 

 

2. 교회를 사람에 미유할 때 교회의 두 가지 면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3. 조직체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떻게 됩니까?

 

 

 

4. 로마 교회의 성직제도에 대해 말해 봅시다.

 

 

 

5. 유기체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떻게 됩니까?

 

 

 

6. 유기체적인 교회의 모습을 어떻게 나타납니까?

 

 

 

7. 교회의 유기체적인 면을 제도화하면 어떤 위험이 있습니까?

 

 

 

8.교회의 조직체적인 모습은 무엇입니까?

 

 

 

9. 직분과 직무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10. 어떻게 되어야 교회의 거룩한 본질이 나타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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