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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청교도의 성쇠와 칭의 교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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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의 성쇠와 칭의 교리 요약

 

1. 칭의의 고백

 

 

* G.C.벌카워 교수는 칭의를 이렇게 평가한다. "신학상의 칭의의 고백은 인간의 삶의 핵심, 곧 인간의 삶과 하나님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칭의의 고백은 교회의 설교와 믿음 생활의 실존과 진보, 인간의 안전의 근원 그리고 인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정의한다."

* 칭의는 모든 종교개혁 지도자들과 그들이 발기한 모든 고백들이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되는 진리이며, 교회의 흥망이 좌우되는 지점으로 보았던 진리이다.

* 루터는 '이신칭의'라는 이 진리가 자신의 죽음 후에 보다 강력한 공격을 받을 것과 신학은 이 진리를 오류와 불가해 속으로 가라앉히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청교도 저자들은 칭의 교리가 매우 공격받기 쉽고, 오직 은혜만이 이 교리가 망각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칭의의 신비와 이 신비를 위협하는 것들

1) 청교도 저자들은 칭의가 복음의 신비(은혜에 의한 신령한 계시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칭의는 이중적으로 교만을 꺾는 것이다.

① 칭의는 지성의 교만을 꺾는다.(신앙적 판단력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로 추측될 수도 해결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② 칭의는 도덕적 교만을 꺾는다.(모든 인간이 죄 가운데 절망적이며 무기력하다고 가정함으로) 당연히 사람들은 이 교리를 불쾌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칭의의 신비는 끊임없이 인간의 교만에 의해 위협받는다.

2) 칭의는 점증하는 신비이다.

트레일은 "기독교 진리의 모든 위대한 기초들은 이 칭의의 진리에 집중해 있다"고 기술했다. 그의 주장은 관계에 있어 칭의를 부정하는 것은 다른 진실들도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진노, 속죄에 대한 그릇된 신앙은 칭의를 선언하는 모든 근거를 제거하였다. 따라서 이단적 신학이 칭의의 신비에 대한 또 다른 위협이 되고 있다.

3) 칭의는 죄를 깨달은 인간의 교화된 양심만이 감지할 수 있는 신령한 신비이다.

트레일은 "칭의라는 주제가 심령과 양심이 이 진리에 대해 전혀 영향을 받은 적이 없는 많은 자들이 이 진리에 대해 손과 펜을 사용했다" 고 불평한다. 하나님께 나아감에 있어 진지성과 경험이 결핍된 영적 경박성이 칭의에 대한 세 번째 위협인 것이다.

4) 칭의는 생명을 주는 신비이다.

즉 양심의 참된 평화가 소망, 사랑, 기쁨, 확신의 근원인 것이다. 청교도들은 사단의 적의를 칭의의 신비에 대한 네 번째 위협으로 보았다. 사단이 하나님에게는 풍성한 영광이며, 인간들에게는 유익이 되는 진리를 반드시 은폐하고자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5) 칭의는 부정되는 신비이다.

행위에 의한 칭의는 타락 이래 인류의 자연종교였다. 청교도들은 펠라기안주의, 알미니안주의, 반종교개혁 카톨릭이라는 신학적 가족 셋을 복음에 의해 수태된 사생아로 보았다. 이와같이 자연종교는 칭의의 신비에 대한 다섯 번째의 위협이다.

 

* 신교의 교리가 청교도시기(16세기말-17세기말)에 발전하였다가 쇠퇴한 과정을 볼 때, 발전은 영적 활력이 선명하게 타오른 집단에서 일어났으며, 쇠퇴는 이성주의와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고, 경건에 대한 오래된 적의가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

 

2. 칭의의 요점(칭의교리의 발전)

 

* 루터의 관심은 언제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죄인들을 의롭다 하신다는 것을 복음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칭의를 인간의 절망적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답변으로 설명했다.

* 한편 청교도들은 루터의 관심보다 더 발전한 관심(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와 역사와 영광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관심)을 추가했다. 루터의 관심이 복음전도와 설교의 기능이었다면 청교도들의 관심은 영광의 찬미와 예배의 기능이었다.

 

* 종교개혁자들의 칭의에 대한 설명(7가지 요점으로 요약)

1)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마주하여 하나님께 스스로 답변해야 한다. 교회는 이 일로부터 그를 보호할 수 없다.

2) 모든 사람은 본성과 실행에 있어 죄인이며, 하나님의 율법이 관련하는 한 비준행자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진노와 퇴짜밖에 기대할 수 없다.

3) 칭의는 범죄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자녀로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사법적 행동이다.

4) 칭의의 원인은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주도가 아니라 은혜이다.

5) 칭의의 근거는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적 의와 피흘리심이다.

6) 칭의의 수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7) 믿음의 열매, 즉 믿음의 실제의 증거는 분명한 회개와 선행의 삶이다.

 

청교도의 칭의 교리 발전의 요소들

* 카톨릭과 알미니안주의와의 논쟁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 간의 구원의 연합의 본질에 대한 더 정밀한 숙고를 촉구하여 칭의에 대한 사상의 발전에 이르게 되었다.

 

1) 칭의의 근거

* 트랜트 종교회의는 칭의를, 갱신이 용서의 근거라고 정의하였고, 칭의의 '유일한 형식적 원인'은 수단적 원인인 세례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의라고 확인했다. 따라서 이 명제에 의하면 우리가 용서를 얻는 근거는 우리 자신 안에 순수하고 의롭게 만들어졌기 때문에(신적 의가 주입됨)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고, 우리 죄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선언하신다는 것이다.

* 한편 개혁 신학자들은 이미 칼빈에 의해 명백하게 제시된 견해를 끌어내었는데 그 견해는, 칭의의 '유일한 형식적 원인'이 전달된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그리스도의 적극적 순종(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심)과 소극적 순종(율법의 형벌을 받으심)을 우리에게 전가함에 의존한다고 주장했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믿음이 그 자체에 있어 사실상 '개인적인 의'이므로 믿음이 '의로 간주된다'고 생각했고,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새율법으로 보았다.

* 이처럼 카톨릭과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신자 자신에게서 칭의의 근거를 찾음에 의해 한편으로는 인간의 교만을 만족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성자의 영광을 도적질한다는 것이다.

 

2) 중생과 칭의

* 카톨릭의 주장: 그들은 종교개혁자들이 내적 갱신과 주관적 의가 칭의의 어느 부분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칭의가 중생 없이, 믿음이 선행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구실로 개혁자들을 공격했다.

* 개혁자들의 답변: 언제나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적극적으로 선행을 하는 것이 성령의 선물인 성경적 믿음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카톨릭은 신학의 이해와 신자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영적 인식 모두가 결여되어 있었다.

* 알미니안의 명제: 칭의는 궁극적으로 분석해 볼 때 인간의 활동일 뿐 아니라 행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즉 선행의 은혜가 비록 필수 조건이기는 하지만 사실상의 원인은 되지 않고 칭의의 믿음은 독자적인 성취라는 것이다.

* 청교도의 응답

① 종교개혁자들의 유일한 칭의의 도구인 믿음이 칭의된 그 사람 안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원 성취에 필요한 모든 다른 은혜들도 동반한다.

② 청교도들은 칭의의 믿음이 중생을 포함하는 효과적 소명을 통해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 결과적으로 이 강조를 통해 비록 칭의와 중생이 별개이지만 중생 없이 칭의는 생길 수 없음을 입증함으로 카톨릭에 답변했고, 인간의 믿음이 얼마나 완전하게 하나님의 선물인가를 입증함으로 알미니안주의자들을 처리했다.

 

3) 칭의의 언약관계

* 청교도는 '언약신학' 이라고 칭해지는 것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이 신학을 이신칭의라는 보석이 진열되어야 할 성경 배경으로 보았다. 그들은 이 언약 개념을 세 가지 이유로 소중히 여겼다.

① 언약 개념이 하나님의 신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을 하나님의 선민들을 믿음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② 언약 개념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 단계들인 '황금 사슬' 가운데 칭의의 위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③ 언약 개념이 자기 백성의 중보자이서며, 연합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뚜렷하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4) 청교도 진영 내의 그릇된 진술로부터 칭의 교리를 보호

① 칭의가 영원부터, 즉 믿음 이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칭의를 선택에 일치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 사상은 칭의의 믿음을 사람이 칭의를 받았다고 알고 있는 것으로 끌어 내림으로 탐구자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적극적인 신뢰를 행사하는 대신 확신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기다리는 상태가 되게 한다.

② 하나님께서 칭의를 받은 자들의 죄를 간과하신다는 것이다.(도덕률 폐기론)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자유와 평안과 기쁨을 확대하려는 열심 때문에 두 가지 구별에 대한 시각을 잃어 버렸다.

㉠ 행위언약으로서의 하나님의 율법과 삶의 법칙으로서의 하나님의 율법간의 구별

㉡ 칭의와 자녀로 삼으심, 또는 하나님의 신자에 대한 심판자로서의 관계와 아버지로서의 관계에 대한 구별

 

3. 칭의교리의 왜곡(칭의교리의 쇠퇴)-알미니안주의와 리차드 백스터의 신도덕률주의

* 알미니안주의는 개혁신학의 몇몇 기본 선언들에 대한 부정이었다.

1) 이미 주지된, 곧 인간의 믿음 활동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에 대한 부정.

2)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그리스도의 적극적이며 소극적인 순종에 의한 구속의 획득과 성령에 의한 구원의 적용 간에 직접적인 상관이 있다는 것에 대한 부정.

-알미니안의 대안: 그리스도의 속죄가 모든 사람의 구원을 가능하게 했으나 반드시 현실상의 어느 누구나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대속의 개념 폐기)

3) 은혜언약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택된 자에게 말씀하시는 효과적인 부르심에 의해 일방적이며 무조건적으로 부과한 관계라는 것에 대한 부정.

-알미니안의 대안: 은혜언약이 현재의 믿음을 조건으로 현재의 용서를 주고 믿음의 지속을 조건으로 최후의 구원을 주는 새로운 율법이라는 것이었다.

4) 믿음이 본질적으로 굳은 신뢰(타인을 신뢰하고 그가 행한 바를 신뢰하는 문제)라는 것에 대한 부정.

-알미니안 대안: 믿음이 의지적(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 즉 그리스도가 마련한 새율법에 의해 살기 위해 전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5) 칭의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라는 것에 대한 부정.

-알미니안의 대안: 믿음 자체가 칭의의 근거로(새율법에 대한 순종) 의이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는 것이다.

 

* 알미니안주의가 청교도 진영으로 잠식해 들어옴

1) 존 구드윈: 유일한 알미니안 청교도.

2) 찰스 시대의 영국 국교도들, 캠브리지의 플라톤 학파들, 후기 광교파들: 알미니안에 동조하고 칼빈주의 논쟁에 가담.

3) 불(Bull) 감독: 후기 사상(영국 기독교 신앙의 주류)의 전형적인 인물.

4) 새로운 율법주의 등장

-중심사상: 꾸준하게 도덕적 노력을 하는 것이 내세의 구원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에 의지하는 믿음의 의미는 망각되었고, 회심과 확신의 경험은 영혼에 위험한 '광신'으로 처리되었고, 현재의 칭의는 더 이상 중요하거나 흥미 있는 논쟁이 될 수 없었다.

5) 신감리교도들의 중재신학: 유럽 대륙에서 알미니안 논쟁의 한 가지 결과로 탄생되었다.

-스코트 존 카메론에 의해 주창되었고, 모이스 아미라우트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아미랄드주의가 되었다.

-중심사상: 은혜 언약과 보편적 속죄에 대한 알미니안 견해를 채택하지만 특별선택, 효과적 부르심, 궁극적 보존에 대한 칼빈주의의 신앙을 그대로 보유한다.

-아미랄드주의의 중요성: 그리스도인의 실천에 대한 가장 위대한 청교도 저술가인 리차드 박스터가 이 이설을 지지했다. 1990년대 이 이설은 '박스터주의' 그리고 '신도덕률주의'로 칭해졌다.

 

* 박스터의 견해는 자연신학에서 나왔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당시의 정치사상들과 일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신학이 '정치적 방식'을 따라야 함) 그는 주로 알미니안주의자인 휴고 드 그루트에게서 배운 이 정치적 구조 개념들에 아미랄드주의의 구원론을 조화시켰다.

또한 박스터는 칭의의 근거와 형식적 원인이 그리스도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함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논리적으로 '하나님께서 두 번 지불을 요구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도덕률 폐기론과 관련되었다고 확신했다. 이처럼 박스터는 율법주의 경향을 자신의 신학 체계에서 제거하지 못했다.

 

* 박스터의 '정치신학'에 대한 평가

1) '정치적 방식'은 그 자체가 합리주의적이다.

2) 죄에 대한 '정치적' 관념은 죄를 법률상의 범죄와 유사한 위범과 범죄로 나타낸다.

3) 그리스도를 그의 백성들의 우두머리로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정부의 우두머리로 보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죄 사면의 원인으로 보다는 필수 조건으로 보고, 죄 사면 자체를 개인적 용서로 보다는 공적 특사로 보는 '정치적' 관념이다.

4) 믿음을 신하의 충성과 위탁으로 보는 '정치적' 관념은 자기 절망적 의뢰의 중요성을 시야에서 놓친다.

5) 하나님에 대한 '정치적' 관념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을 상실한다.

 

* 박스터의 부정적 영향

그는 억지로 성경을 연역적 형틀에 맞추는 '정치적' 방식의 최초의 합리주의로 죄에 대해서는 교훈주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아리안주의, 믿음과 구원에 대해서는 율법주의, 하나님의 죄에 대한 진노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의 씨앗들을 심었다.

박스터의 예는 단지 청교도들 가운데에서 칭의 교리의 쇠퇴만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한 청교도의 통찰력이 쇠퇴하는 초기 단계였던 것이다.

 

* 결론

이와 같이 한 세기 이상의 복음의 빛이 비추인 후에 알미니안주의는 영국 국교도의 정신에, 박스터주의는 비국교도의 정신에 흑암을 들여왔다. 자연신학과 종교적 교훈주의가 영국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성경의 칭의 교리는 휫필드의 음성이 국가 전역을 울릴 때 까지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는 믿음에 의한 칭의의 성경의 복음에 대해 완전히 알고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람으로 그와 함께 영국 기독교의 새 장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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