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9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를 먼저 부르면서 기도를 시작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아버지로 나타내는 경우는 15번 정도이다 (신 32:6; 렘 3:4 등). 구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강조하려는 목적과 (사 64:8),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강조하려는 목적이다 (신 14:1-2).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父性적 사랑을 강조하려는 목적도 있다 (시 103:11).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불경스러운 것으로 생각해서, 개인이 직접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경우는 없다.
복음서에는 ‘아버지’가 170회 이상 등장한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심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교회까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다. 롬 8:15에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아버지라는 용어는 아람어로 ‘아바’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인격과 사명을 밝힌다. 마 11:27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계시의 유일한 중보자라고 말한다. 막 14:36에 “아바 아버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밝힘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다볼 때 아바가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불러야 한다. 이 말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신뢰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친근함과 의존성이 강조되어 있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기에 우리보다 초월해 계시는 분이시다. 즉 우리의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이제 ‘우리’에 초점을 모아 보자. 주님은 나의 아버지와 너의 아버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우리 아버지란 말은 교회와 예수님의 연합을 가리키지 않는다. 성도와 성도 사이의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신약 교회 전체가 공유하는 기도이다.
적용을 해보면 주기도문의 시작에 이미 교회의 공동체성이 명시되어 있다. 우리는 좁게는 특정 지역교회로 모여 동일한 한 분 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그 아버지는 우선적으로 사랑의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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