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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주기도문] 마 6장 9절 하반절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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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장 9절 하반절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의 첫 번째 간구를 살펴보자. 구약에서 이름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인격이나 그 사람 자체를 가리킨다. 사람이 새로운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창 17:5) 야곱이 이스라엘로 (창 32:28)로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이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창 17:1), 모세에게는 여호와 하나님 (출 6:2)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3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출 20:7) 주의를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과 임재하심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약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예수님 자신의 인격, 임재하심 및 능력과 동등하게 간주한다. 예를 들어 마 18:5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바로 그것은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며, 마 18:20에서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예수님이 임하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와 같은 말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하지 않아도 원래부터 거룩하신 분이 아니신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람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 오신 분이심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요 17:26에서 “의로우신 아버지여,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예수님의 과거의 사역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하신 사역이고, 미래의 사역은 하나님의 이름을 장차 알게 하시는 사역이다.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어느 시점이 되면 천하만민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예언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겔 39:7에서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줄 알리라.” 이런 예언은 주로 메시아 예언의 문맥에서 나타나기에 (욜 2:28-32; 암 9:11-12; 슥 14:1, 9),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높임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서 이루어 질 것을 예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구약의 예언을 이루는 차원이라는 말이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서 ‘거룩히 받으시오며’는 아오리스트 수동 명령형이다. 이 말은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름을 거룩히 하신다는 것이다. 주체는 위의 메시아 예언의 빛에서 볼 때 성부 하나님이 아니라 성자 예수님이시다. 아오리스트이기에 어떤 결정적인 한 순간에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되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단번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승천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영화롭게, 요 12:28) 하셨다면 신약 교회에게 이 기도를 가르치신 의도는 무엇인가? 이 간구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과거에만 묻혀져 있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계속 선포되고 확장되어야 할 사건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거룩하게 되신 하나님의 이름이 더욱 선포되고 완성되어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사도행전은 계속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죄 사함과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지 않았는가?

 

따라서 우리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를 암송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거룩하게 되신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의 선포와 삶으로 더욱 온 세상에서 거룩히 되고 영화롭게 되도록 해야 한다는 선교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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