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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바울의 십자가-예수님의 죽음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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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십자가-예수님의 죽음 이해

 

(고신대 송영목 교수님 )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은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의 대적이 정복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통치가 결정적으로 시작된 곳이다. 십자가와 관련하여 바울은 예수님을 둘째 아담으로 소개하며, 성도가 죄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킴을 받아 (dying and rising with Christ) 강조한다. 바울의 십자가는 성도가 죄와 육체와 율법에 대해 죽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산다는 메시지는 이방 신비주의 (. Firmicus Maternus, Apuleius, Thessalian lamellae, Plutarch) 일정 부분 유사한 흔적을 가진 바울의 신비주의 (Pauline mysticism) 반영이 아니라, 교회와 예수님 사이의 신비로운 연합의 결과이다 (참고 Pelser, 1998:115).

 

3.1. 예수님의 죽음의 우주적인 성격

3.1.1. 아담이신 예수님

바울은 주님의 부활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건 다른 사람을 포함하며 다른 사람이 공유할 있는 사건으로 설명한다 ( 3:24-25; 5:8-11; 8:3-4, 31-32; 고전 15:3; 고후 5:14; 4:4).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의 이같은 보편적인 의미를 아담-그리스도론 (Adam-Christ)으로 강조한다. 고전 15:21-22절에서 바울은 아담의 범죄를 예수님의 부활과 비교하는 한편, 5:12-21절에서는 아담의 죄를 예수님의 죽음과 비교한다.

 

3.1.2. 지배권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우주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가지 수단은 지배권이라는 개념이다. 사상 구조는 세상에 있어서 세력 구조의 변화를 나타낸다. 한편으로, , 사망, 육체, 율법의 권세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 예수님, 은혜, 성령님의 권세가 있다. 이것은 성경에 나타난 이원론적 세계관과 유사하기에 굳이 바울에게만 있는 독특한 것으로 이유는 없다. 십자가 사건은 아담 이후로 우주를 지배해 지배권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죄에 의해 지배당한 세대 (the old age) 종막을 고하게 된다. 이제 세대 (the new age, the age to come)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되었다. 종말의 실재 (reality) 비록 '아직'까지 완전한 형태로는 아니지만, '이미'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죄악에 종속된 사람을 해방하시고 새롭고 종말적인 지배권을 새로 짜셨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시고, 성령의 내주와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는다. 예수님과 성령이 성도의 주되심은 질서 속에 사단이 사람을 억압하던 방식으로 다스리는 것과는 다르다. 대신 주님의 주되심과 통치는 성도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송영의 반응을 초래한다.

 

 

3.1.3.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일어난 일이며 계속 일어나야만 하는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보편적인 제공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기꺼이 연합되고 죽음과 부활에 참여할 때에만 개인에게 유효하게 된다. 6:1-11절에 의하면, 성도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이며 (3), 이는 또한 주님의 부활에도 참여하기 위한 것이다 (5). 이를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죄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셔서 육신의 죄를 정죄하셨다 ( 8:3-4). 십자가에 박히신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었기에 죄와의 연합을 계속해서 깨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가 하나님께 대해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십자가 사건에 참여하는 것이며, 동시에 세례를 통하여 동참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집합적인-우주적인 인격 개념을 바울은 어디에서 배웠는가? 크리스챤 베커 (1998:215) 말하듯이 유대 묵시주의인가? 주님의 구원을 위한 교회적 인격은 복음서와 요한 문헌에 이미 함축되어 있다 ( 1:23; 2:15).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은 율법에 대해 죽음의 신학으로 확장된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선언하는가? 율법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로 규정하지만 ( 3:13), 주님의 부활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무죄를 입증한다. 율법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무죄한 분을 정죄한 부분에서 잘못되었다. 8:3-4절에 의하면 율법 아래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육신의 죄를 정죄하기 위해 오셔서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셨기에, 사람을 정죄할 율법은 불필요하게 되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율법은 마침이 되었다. 이제 성도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산다 ( 5:16-26). 이러한 율법의 폐지는 이스라엘에게서 선민의식과 특권의식을 박탈한다. 7:13-14, 22절에서 바울은 율법이 거룩하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규정하지만, 동시에 성도는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유는 성도가 외부적인 계명으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내부적인 사랑과 순종 그리고 성령의 능력에 의해 권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하기 때문이다 (참고 살전 4:19). 바울에게 있어서 사랑의 동기에서 행하면 구체적인 율법의 규정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율법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율법을 성취하는 사람이다 ( 13:10).

 

바울이 자신의 고난을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참여하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주로 고린도후서에서이다. 고후 4:8-9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환난과 하나님의 위로를 연결시킨다. 이러한 바울의 고난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의 일부이다. 고난은 바울의 내면을 강화시켰을 아니라 공동체에 생명을 가져다 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바울의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십자가에 참여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부활,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 그리고 육체의 부활의 소망 등과 관계 없이는 정확하게 이해될 없다. 십자가는 단순히 죽음의 체험이 아니다. 십자가는 생명으로 돌아온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십자가가 아니라 소망스러운 부활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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