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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새 관점 학파에 대한 평가_New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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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학파에 대한 평가

 

여기서 Sanders Dunn으로 대변되는 ' 관점' 관한 간단한 평가가 필요하다. 관점 주창자들이 사용한 자료는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를 재건하기에 과연 객관적인가? 이들이 인용하는 외경, 위경, 초기의 랍비 문서, 쿰란 문서들이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이들은 "하나님은 의인에게 자비를 베푸시는데 그들의 선행 때문이다"라고 밝히는 유대인의 공로 사상을 반영하는 ' 2에녹', ' 4에스라서', 'Jubilees 15:3-4', 요세푸스의 'Apion 2:174', 'Sirach 44:19-21', 'CD 3:2', '1QS', '1QH' '12족장의 유언' 등을 정당히 다루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위해 자료를 취사선택했다는 느낌을 지울 없다. 따라서 샌더스의 우산 개념 (umbrella concept) 언약적 율법주의에 비가 세는 구멍이 많다. 그리고 이들의 주석은 세밀한 것처럼 보이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그럴듯한 말로 주관적이고 임의로 주석하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 바울이 유대교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을 인정했더라도, 신인협동설적인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반대했다는 증거가 바울 서신에 나타나고 있음에도 관점 주창자들은 애써 무시했다 ( 3:27-4:8; 9:30-10:8; 3:2-11). '율법의 행위'라는 문구가 율법주의 자체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바울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없다고 말할 , 그는 율법주의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 3:21). 바울이 아무도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는 의로워질 없다고 말할 , 이런 말들은 율법이 명령하는 바를 행함으로 의로워질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의 유대교 내에서 발생한 위선적인 율법주의적 유대교 (legalistic Judaism)로의 사상적 변화를 무시하고 있지 않는가? 포로 귀환 이스라엘이 율법에 대한 충성을 새롭게 것은 좋았지만, 점차 헬레니즘의 침투에 대항하기 위해 (일부 유대인은 이방 영향과 타협했지만) 그들의 구별된 정체성과 삶을 위해 율법 준수를 더욱 강요했던 것은 분명하다. 점차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면하기 위한 , 나아가 의를 얻기 위한 것으로 발전해 버렸던 것으로 추정할 있다. 관점과는 반대로, 여전히 많은 학자들은 1세기 유대교는 율법 준수를 통한 구원을 강조했고, 랍비 종교의 목표를 '공로로 상을 얻는 '이었다고 본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보복의 율법' (the law of retribution) 따라 심판하시기에 구원은 확실히 보장이 되지 않고, 따라서 회개와 믿음은 공로적인 (meritorious works) 되고 말았다. 루터와 개신교의 전통적인 해석에서 주창해 왔듯이, 사도 바울은 사람 (유대인) 연약하여 온전히 율법을 준수할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를 거부하여, 대신 행위구원에 집착한 유대인을 비판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개신교 학자들이 랍비 유대교를 논할 , 그들은 율법주의적 유대교를 대항한 바울의 비판을 염두에 두면서 동시에 루터가 카토릭을 바라본 렌즈를 통하여 해석했다. 1세기의 바울과 16세기의 루터는 1세기의 율법주의적인 유대교와 16세기의 행위 구원을 가르친 중세 카토릭이라는 유사한 대적과 싸웠던 것이다. 여전히 관점은 이런 전통적인 주장을 엎을 만한 것이라고는 보여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2:16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전통적인 방식으로 명확하게 해석할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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