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다메섹 체험이 그의 신학에 미친 영향
신약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분량을 기록한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다메섹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Christophany) 회심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apokalypsis: 갈 1:12)이었다.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그가 전한 복음의 기원 (the origin of Paul's Gospel)으로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중생과 소명이 서로 잃혀 있는' 다메섹 사건을 바울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언급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행 9:1-19, 22:3-16, 26:9-17; 참고 고전 9, 15; 갈 1). 그렇다면 다메섹 사건은 바울의 사상에 어느 정도 그리고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물론 바울의 유대-바리새인적인 배경과 헬라적 배경도 바울의 신학에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흔적으로 남아 있다. 길리기아 다소 (Tarsus)는 헬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에, 황제숭배 (the imperial cult)와 스토아 철학과 같은 사상적 영향이 바울에게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울은 엄격한 디아스포라의 유대교 가문 출신임을 기억해야 한다. 즉 다소에는 헬라어로 예배를 드리는 회당을 중심으로 유대인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그는 어릴 적에 예루살렘에 이사 와서 바리새인으로서 교육을 받았다 (빌 3:5). 하지만 바울의 신학의 기초는 이러한 헬라적 혹은 유대교적인 배경이라기보다는 급작스런 다메섹 체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메섹 사건은 회심차원을 너머 사도적 소명과 권위 그리고 계시와 연관되어야 한다 (갈 1:1).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와 같은 사람에게 배워서 획득한 계시를 선포하지 않았다 (갈 1:11-12). 대신 하나님의 은혜로 직접적인 계시를 받아 복음의 핵심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다. 그러나 다메섹 사건이 바울 신학의 주요 논점 그 자체는 아니다. 바울에게 다메섹 사건을 선포할 의향은 없었다. 바울이 자신의 복음, 소명, 그리고 사도적 권위가 다메섹 체험에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다메섹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
마륵센 (W. Marxsen)과 같은 편집비평주의자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활 자체가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묵시적) 신앙과 고백의 문제이기에, 바울이 부활의 주님을 실제로 만났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재인용 in 플레브닉, 2000:30). 하지만 다메섹 사건은 묵시적 사상이 반영된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바울과 부활하신 예수님 사이의 직접적인 대화가 이루어졌던 사건이다.
사실 학자들은 다메섹 사건을 여러 차원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비평적인 해석은 물론, 바리새적 가르침과 율법의 타당성에 대한 바울의 내면의 갈등과 같은 종교-심리적인 현상만으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신비적 체험, 환상, 황홀경과 같은 용어들은 다메섹 사건의 한 부분만을 설명할 뿐이다 (참고 고후 12:1-4). 바울은 오히려 이 사건을 '계시'와 '주님을 보는 것'으로 묘사한다.
다메섹 사건은 바울의 삶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었으며, 박해 받던 기독교 공동체는 이 회심 사건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지만 (갈 1:23-24), 동료 유대인들은 율법의 마지막이신 그리스도를 믿었던 바울을 오히려 율법을 범했다고 대적하며 정죄했다 (고후 11:24-25; 갈 6:17; 참고 신 25:2 이하). 그 때 바울은 표면적인 유대인을 벗고 이면적인 유대인이 되었으며, 표면적인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을 할례를 받았다 (롬 2:28-29).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님으로 믿고 알게 되었다. 바울은 십자가는 저주가 아니라,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과 사랑의 표시였음을 알게 되었다 (롬 5:6-10; 8:31-32; 갈 2:20). 바울은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새로운 구원의 질서이며 (갈 4:4), 옛 시대와 율법을 대치하였음을 깨달았다. 다메섹에서 바울이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과 신앙이 시작되었다. 즉 바로 이 사건이 바울이 독특하게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주되심에 대한 신학적 강조점의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신앙으로 이전의 율법과 할례 등에 관한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재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것은 더 이상 하나님과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되지 못했다 (롬 5:18-21; 7:1-25; 빌 3:3-9). 오직 부활하신 그리스도만 통로가 되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성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고 동참하는 것이다. 심지어 다메섹 사건은 바울의 (구약) 성경 이해에도 변화를 주었다. 고후 3:6-18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구약을 읽을 때 수건을 벗은 얼굴로 보게 하여 그리스도의 빛 속에서 해석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새 언약의 일군으로 자청한다 (고후 4:6).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계시만 받은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도로서의 소명도 받았다(행 26:16-18). 김세윤 교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약과 유대교에서는 말씀에 의한 계시가 없는 신의 현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항상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증거의 말씀과 자신의 사도 임명의 말씀이 수반되는 것으로 묘사되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사도로 임명하시는 것과 같은) 다른 부활의 나타남과 같은 성질의 것으로 생각한다 (마 28:9-10, 16-20; 눅 24:13-35, 36-43; 요 20:19-29; 21:1-23)." 따라서 다메섹에서는 단지 핵폭탄과 같은 사도로서의 소명만 받았고, 시간이 흘러 이방인의 사도로 구체적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아마 바울과 지상의 예수님과의 대면이 없었고, 다메섹에서 구속 사역을 성취하신 예수님과의 바울이 대면한 것은 주로 성취-완성의 빛 속에서 계시가 주어진 이유가 된다. 즉 구원의 보편성, 새 창조, 믿음, 율법의 마침과 같은 주제 (롬 10:4)는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상의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유이다. 따라서 바울의 전체 신학이 다메섹 체험의 영향 하에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물론 바울의 신학 안에 발전된 모습이 등장한다. 여러 가지 상황과 선교적 필요성 등으로 인해 그의 신학은 발전되었을 것이다. 즉 다메섹에서 회심한 이후 약 25-30년이 지나서 기록된 서신들에는 파루시아에 대한 기대가 긴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든가, 대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현재적 연합이라는 주제가 부각되고, 이신칭의 등에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것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메섹 사건에서 복음 선교의 본질적 내용이 부여되엇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울의 모든 신학이 다메섹 사건에서 결정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 고신대 송영목 교수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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