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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고린도전서 설교] 교회의 능력은 하나됨에서 나온다(고전 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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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능력은 하나됨에서 나온다(고전 4:16-20)

 

지상에 있는 교회의 사명은 보이지 않은 교회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

벌써 고린도전서 강해를 시작한지 오늘로 스무 번째 시간입니다. 그 동안 우리가 생각한 것은, "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교회의 원형이 아니라 그 원형을 나타내는 사명을 가진 '지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대신교회는 비록 교회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교회의 원형이 아니라 지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입니다. 즉 지 교회는 세상 속에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으면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광스러운 교회의 그 모습을 지상에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교회인 것입니다. 서대신교회는 완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이므로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지상에 나타내는 것을 사명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영광스러운 교회를 나타내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상에 조직체로 존재할 때 이는 친목계도 아니고 클럽도 아닙니다. 무슨 단체도 아닙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그릇, 영광스러운 교회를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인 증거는 교회의 징표

교회가 교회인 것을 확인하는 것은 교회의 징표를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이대상이 사람이다, 아니다를 대번에 판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겉모양이 사람으로 생겼기 때문이지요. 이 사람의 피부색깔이 검든지 희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은 보면 사람인지 확인이 되지요. 그것이 '징표'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교회를 보면 교회인 것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징표가 있습니다. 제가 학생들을 지도할 때 교회에 처음 나오는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교회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니?" 그랬더니 아이들이 답변합니다. "십자가요!" 제일 많이 얘기하는 것이 "십자가요!" 두 번째로는 "교회당이요, 목사님이요, 장로님이요..." 대답이 많아요.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답변이 뭐냐면 십자가예요. 그리고 교회당, 교회 건물을 이야기하는 경우들이 많죠. 이 아이들은 교회하면 십자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러나 교회 건물에 십자가를 걸지 않으면 교회일까요, 아닐까요? 우리 교회 종탑에 십자가가 있는데 그것이 똑 떨어지고 나면 교회일까요, 아닐까요? 교회인 증거는 십자가라고 하는 상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십자가가 전달하고자하는 의미로써 우리 자신들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나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의 외적인 표지, 교회를 대번에 알아볼 수 있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표지는 십자가가 아니다 그 얘기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교회된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그래서 교회의 징표 세 가지를 이야기하지요. 첫째는 말씀의 참된 선포, 둘째는 성례의 정당한 집행, 셋째는 권징의 신실한 시행.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모두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말씀의 참된 선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인 양식으로 아주 은혜롭고 순결하게 공급하는 거예요. 그리고 '성례의 정당한 집행'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보이는 형태로 공급하는 겁니다. 세례와 성찬은 하나님의 말씀의 그 핵심 되는 복음을 담고 있는 것이에요. 세례의식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이 거룩한 도리를 가르치게 되어 있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그 피의 공로, 그 죄 사함의 은혜를 입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다 이루셔서 마련하신 의를 우리의 것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여 이 모든 축복들을 받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 이 보이는 말씀이 바로 세례라고 하는 것이지요. 성찬예식도 보이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내 살이요, 이것은 내 피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 은혜를 성찬예식에 담았습니다. 그 외적인 모습을 통해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곧 십자가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보이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권징'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성도들의 순결한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교회를 순결하고 아름답게 보존하기 위해서 시행되는 것이에요. 즉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표지는 무엇이어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의 징표예요. 사람을 보면 '아, 저 사람이 사람이구나!'하고 대번에 아는 것처럼, 교회를 볼 때 '아, 저게 교회구나!'라고 알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있어야 된다고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되요.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터 위에 이 교회가 세워지게 되어 있지요.

 

지상교회가 세워지는 원리

이와 같은 원리로써 지상의 조직교회가 세워지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원리 속에서 지상의 조직교회가 세워질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말씀 사역자가 먼저 있고, 그리고 이 말씀 사역을 통하여 말씀을 배우고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가 존재하면서 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져 가는 거예요. 그럴 때 이 교회가 조직체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말씀 사역자가 있고, 그 말씀 사역자의 가르침 속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공동체가 있으되, 그 공동체가 말씀 사역자의 생활과 그 사역을 지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능력이 없으면 교회를 이루기는 하였으나 교회법에 의해서는 아직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교회법에 의해서 교회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말씀 사역자가 있고, 그 말씀 사역자의 생활과 삶을 지원할 수 있는 재정적인 독립이 이루어져야 되요. 그래야 교회법에 의해서 교회인 거예요.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래서 노회에 개척교회를 설립하는 허가를 받기 위해서 '교회설립허락청원'을 냅니다. 그럴 때 교회가 노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이 있어요. 목사님이 있느냐, 그리고 이 목사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있느냐, 이 때 기준이 세례교인 25인 이상 있어야 된다는 거지요. 그 다음에 세 번째 조건이 뭐냐면 이 사람들이 목사님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느냐? 그겁니다. 교회재정의 1차적인 목적은 말씀 사역자를 세우는 거예요. 말씀 사역자를 세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교회가 교회로 독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리는 시금석이에요. 그리고 교회가 점점 커지고 재정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제 다른 일들을 행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사역자를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면 다른 일들을 아직 행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이 교회가 지상에 조직교회로 세워져가는 원리인 것이지요. 왜 이렇게 말씀 사역자를 지원하는 문제가 지상의 조직교회로 세워지는 원리가 되었을까요? 교회의 징표가 말씀이기 때문이에요.

 

목사님이 선교사로 파송을 받을 때에는 '교회설립권'이라고 하는 것을 받습니다. 파송식을 행할 때 "이제 교회설립권을 주노라!" 이런 선언이 있어요. 그렇게 파송받은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게 되면 교회를 세우게 되지요. 그 때에는 본국 교회의 허락을 받아 교회를 세우지 않습니다. 본국에 있을 때에는 본국 교회의 허락을 받아서 교회를 세웁니다. 제가 어디 가서 교회를 세워도 제가 혼자 교회 세우려고 간판 건다고 교회가 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외적으로야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러나 아직 법적으로 교회가 된 것은 아니에요. 본국 교회의 허락을 받아야 되요. 노회에 '교회설립허락청원'을 내고 노회에서 허가를 내줘야 비로소 교회가 되요. 그 때 앞서 언급한 조건들이 있어야 되는 거죠. 선교사는 선교지에 가서 본인이 혼자 갔더라도 거기에서 교회를 설립해요. 그러나 본인이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라고 법적으로 인정할 때에도 이 조건은 분명한 거예요. 말씀 사역자가 있느냐, 그리고 그 말씀 사역자의 가르침을 받고 그 속에서 공동체가 이루어져 있느냐, 그 때 공동체의 기준은 세례교인이 일정한 수의 세례교인이 있느냐 하는 것과, 그리고 그 세례교인들이 헌금을 해서 이 사역자를 생활과 사역을 지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되어야 교회가 비로소 독립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안 되면 교회가 아직 정식으로는 세워진 것이 아니에요. 과거 우리나라에서 선교사들이 교회를 시작했는데, 교회는 시작되었지만 몇 십 년이 지나도록 아직 정식교회로 법적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런 일들이 있었냐면 그 교회는 아직 세례교인 숫자가 그만큼 안 되든지, 아니면 교역자를 독립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재정적인 지원이 안 됐든지, 아니면 교회에 장로님을 세우지 못했든지... 이런 문제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예배를 드리면서 출발은 했는데 20년이 되도록 아직 법적으로는 교회가 아니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 뒤에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던 교회는 불과 2, 3년 만에 재정적으로 독립을 하고, 말씀 사역자를 세우고, 그 다음에 장로님까지도 세울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러면 뒤늦게 출발한 교회지만 교회로서는 그 교회가 먼저 세워지는 거예요.

 

우리 부산에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는 과거에는 초량교회라고 하는 교회가 가장 오래된 교회라고 알려져 있었어요. 그랬는데 어느 날, 범일동의 부산진교회가 자기네 교회를 새로 건축하기 위해 옛 건물을 헐고 보니까 그 교회당 머릿돌 속에서 표창장 하나가 나왔는데 그 표창장은 교회 몇 주년을 기념하여 무슨 표창을 한 표창장이었어요. 날짜를 보고 표창장을 준 날짜로부터 역순을 해 보니까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창립년보다 십 몇 년이 앞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우리 교회설립은 실상은 언제였다 이야기하면서 100주년을 거기가 먼저 해 버렸어요. 초량교회가 이제까지 가장 먼저 된 교회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사기(史記)에도 나와 있었는데, 그리고 부산진교회는 초량교회보다 십 몇 년 뒤라고 역사책에 기록이 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이 쪽지 한 장 때문에 그 교회가 100주년을 먼저 해 버렸어요.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요? 부산진교회가 예배는 먼저 드렸을 수 있습니다. 그 교회는 호주장로교회 여자 선교사들이 와서 세운 교회입니다. 그리고 초량교회는 미국의 북장로교 베어드 선교사라고 하는 분이 와서 세운 교회인데 이 교회의 출발도 실상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았습니다. 호주장로교회 손안로 목사라고 하는 분이 세운 교회와 베어드 목사가 세운 교회가 어느 날 합쳐져서 하나의 교회가 되었다고 하는 초기 역사를 나중에 밝혀내게 됩니다. 그래서 1892년에 초량교회가 부산에서 제일 먼저 설립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부산진교회가 그것보다 더 앞서서 그만 100주년을 하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대한예수교장로회 사기에는 왜 그 교회가 십 몇 년이나 뒤에 시작된 교회로 기록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조직교회로 세워지는 원리 때문이었습니다. 부산진교회는 여자 선교사들이 교회를 설립한 이후 목사님을 세우는데 문제가 생긴 거예요. 목사님을 세우면 자기들은 이제 그 교회로부터 손을 떼야 됩니다. 왜? 목사님이 이제 교회를 모두 다스려 나가야 되니까요. 그래서 여자 선교사들이 그 교회와 관계를 계속 가지면서 목사님을 교회에 세우는 일을 미루다보니까 그 교회는 설립이 뒤진 것처럼 된 거예요. 아마 그 표창장은 이 여선교사님들과 성도들이 처음 예배드렸던 연도를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러나 교회법에 따라서 교회라고 불리고 교회로서 모든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후대의 일이었다는 것이죠. 이와 같이 지상의 조직교회가 세워지는 원리가 있습니다. 조직교회가 바로 세워지면서 교회는 보편교회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그릇이 되는 거예요.

 

임시목사의 경우

목사님 혼자만 있어서도 교회가 완비된 게 아닙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반드시 장로님을 세우게 되어 있어요. 장로님이 세워져서 당회를 구성하고 목사님과 장로님이 당회에서 교회의 모든 일들을 함께 상의하고 진행해 나가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목사님이 개척을 한 후 교회는 커지고 성도들은 늘었는데 장로님을 안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아직 장로님으로 적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장로님 감이 아직 없어서 못 세웁니다..." 사실 이게 목사님들의 이유 중 거의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장로님을 안 세우면 목사님이 노회에서 목사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분은 노회에 소속되어 있기는 해도 정상적인 노회원이 아니에요. 노회에서 투표할 때 투표권도 없어요. 노회의 임원도 될 수도 없어요. 반쪽이죠. 왜 반쪽의 상태로 만들어 놓았을까요? 반쪽으로 그 모든 일들을 제한하지 않으면 목사님이 평생 동안 장로님을 안 세운단 말이죠.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 걸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은 했는데 장로님은 안 세워요. 그러면 장로교가 아니잖아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장로님을 세울 때까지 그 목사님은 자격을 제한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억울하면 어떻게 하라고요? 장로님을 세워라... 제가 서울의 모 노회에 소속된 후 처음 노회를 갔는데 시작부터 목사님들이 막 나와서 뭐라고 발언을 하셔요. 그런데 굉장히 열을 올려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말씀인가 하고 가만히 들어보니까 "임시목사에게 권한을 제대로 보장해달라!" 이런 이야기를 임시목사 되는 분들이 나와서 계속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기 '임시목사'라고 하는 것은 목사님이 아닌데 임시로 목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개척한 목사님인데 장로님을 안 세운 분들을 말하는 거예요. 이 분들이 "우리도 투표권을 달라! 우리에게도 투표권을 달라!" 그러는 거죠. 노회 임원을 선출해야 되는데 "우리도 노회 임원 되게 해 달라!" 이거예요. 이래가지고 막 와서 이야기를 하니까 결국은 그거죠. "법대로 합시다. 법에는 장로님을 안 세우면 임시목사요. 그러니까 그 자격제한된 것 그건 바꿀 수 없습니다. 법에 있는데 이것 무시하고 당신들에게 투표권 주고 뭐 하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불법입니다. 안 됩니다. 그러니까 당신네들이 장로님을 세워야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 해 됐더니 그 전에 임시목사에게 자격제한 하는 것 옳지 않다 막 얘기하던 분이 어느 날 잠잠해요. 알고 봤더니 이 분이 장로님을 세웠어요. 그래가지고 다른 목사님들한테 이 분이 나와서 얘기합니다. 긁적긁적 뒷머리를, 뒷통수라고 하면 좀 그렇고, 뒷머리를 이렇게 긁어대면서 말씀하십니다. "제가 배신했습니다. 장로님을 세워서 이제 임시목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발언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그러시더라고요. 이러니까 노회가 웃음바다가 되었어요. 얼마나 웃었나 몰라요.

 

허위(虛位)교회의 경우

이와는 반대로 교회에 목사님 자리가 비는 수가 있습니다. 장로님들만 존재하고 있지요. 목사님이 비고 장로님들만 있는 상황이면 그 교회는 '허위교회'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 교회 역시 온전한 모양이 아닙니다.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청해야 되요. 청하지 않으면 장로님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왜? 교회에는 반드시 누가 있어야 됩니까? 목사님이 있어야 되요. 그 교회의 모든 영적인 사무를 노회로부터 위임받는 위임목사님이 세워져야 되요. 그런데 장로님들이 임시목사를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1년, 1년만 우리 교회 목회를 하십시오." 그러나 그렇게 임시목사를 세울 때에는 2년을 넘기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법이에요. 왜?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1년마다 바꾸면서 장로님들 마음대로 교회를 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죠. 장로님들이 '야, 목사님이 없으니까 편하다. 아, 목사님 1년마다 바꿔 나가고 우리가 마음대로 하자...' 이렇게 되면 교회가 이상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 법적으로는 임시목사는 2년을 넘기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교회(枝敎會)는 교회의 본질을 나타내야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지상에 세워지는 눈에 보이는 교회는 법에 의해서 세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은 성경의 원리 속에서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교회의 징표를 세우기 위해서 법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동체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가 세워져 나가기 위해서 말씀 사역자를 세워야 하고, 또 성도들의 대표인 장로님들을 세워서 그들이 함께 의논해서 교회의 일들을 해 나가도록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지상에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상교회는 영광스러운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그 거룩하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게 되어있는 것이에요. 그 때 교회가 나타내야 되는 영광스러운 모습, 그것을 우리는 교회의 본질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를 하는데, 첫째는 교회의 통일성, 둘째는 교회의 거룩성, 셋째는 교회의 보편성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통일성'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하나 되었다 그 얘기입니다. 교회는 하나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이 깨어지면 아름다움이 사라져요. 교회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이 교회는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이런 통일된 교회의 모습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말로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에는 지체가 많습니다. 이 몸의 지체들은 서로 각각 다른 일들을 하지만 몸 전체를 위하여 조화를 이루면서 각각의 자기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때 교회가 아름다운 몸이 되는 거예요.

 

통일성이 깨어진 교회

그런데 팔은 이렇게 붙어 있는데 이게 움직이지 않아요. 이러면 어떻게 되요? 문제지요. 요새는 그런 것을 가리켜 '장애'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옛날에는 뭐라고 그랬어요? 'ㅂ'으로 시작되는 두 글자로 불렀습니다. 우리 어릴 때에도 친구들 중에 소아마비로 불편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와 서로 말다툼 하다보면 그 친구한테 꼭 나중에 해 대는 말이 있습니다. 'ㅂ'으로 시작하는 두 글자... 얘기하면 이 친구가 굉장히 충격 받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 때문에 불편하고 자기 마음에 자책지심과 여러 가지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있는데, 친구가 싸우다 'ㅂX'이라고 말해버리면 굉장히 충격을 받죠. 그럴 때에는 이 친구가 말로 하다가 그 말을 듣고 나면 어떻게 해요? 돌멩이를 들죠. 돌멩이 들면 도망가는 거예요. 막 도망가면서 "얼레리꼴레리~" 그러는 겁니다. 몸이 정상이 아닐 때 놀리는 일들이 있어요. 지금은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나 여러 가지 일들이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따돌리고 하는 일들이 여전히 있는 모양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통일된 하나 됨을 제대로 이루어가지 못한다면 이 교회는 멸시를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 제목이 재미있는 책이 있는데 그 책 제목이 '절름발이 예수'입니다. '이야! 제목이 좀 신기하다. 이게 무슨 책일까?' 제가 들춰봤더니 에베소서 강해집이었습니다. 교회를 강해하고 있는 책이었는데 왜 그런 제목을 붙였냐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이 몸의 지체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손에 이상이 생기거나, 발에 이상이 생기거나, 눈에 이상이 생기거나... 소위 말하면 'ㅂ'으로 시작하는 두 글자예요. 교회가 그렇다는 것이죠. 교회가 다투고 분열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러는 것은 무엇이냐면 자해하는 거예요. 자기 몸을 해치는 거지요. 제가 고등학교 때 저희 반에 깡패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중 한 친구가 싸우는데, 저는 그런 애들 싸우는 것도 처음 봤습니다. "이 새X!"하더니만 필통에서 연필 깎는 칼을 딱 꺼내는 거예요. 그러더니 교복 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찍찍 긋는 거예요. 그러면 피가 촥 나잖아요. 그 피 보고서는 싸우는 겁니다. 그래서 그 친구 몸을 보면 팔뚝이나 이런 데 칼로 그은 자국이 있죠. 짝짝짝 그어놨어요. 왜? 피 보면서 싸우게, 피 흘리며 싸우는 거죠. 그거 보니까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어요. 우리 같은 사람은 피 흘리면서 "으왕!" 하고 덤벼들면 무서워서 도망가지, 싸우겠습니까? 자해는 무서워요. 교회 있다 보면 자해공갈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저도 언젠가 교회 앉아 있었는데 시커먼 붕대, 하얀 붕대지만 때가 얼마나 끼었는지 이제 새카만 붕대가 된 거예요. 거기다가 바세린 연고인지 누런 콧물 같은 연고를 막 덕지덕지 붙이고는 사무실에 들어와서 "좀 도와주세요." 그러더라고요. 이래가지고서는 "우리 교회에서는 이렇게 돕는 게 마땅치 않습니다. 그냥 가십시오." 라든지 아니면 100원 이렇게 줘서 보내려니까 "이거 가지고 됩니까?" 하면서 덕지덕지 붙은 것, 누런 콧물 같은 것 묻은 것 같은 이걸 얼굴에 들이대는데 소름이 쫙 끼치는 거예요. 저절로 비명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이래가지고 뭐 볼 것 없습니다.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꺼내서 주니까 그냥 가더라고요. 천 원 주고 나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우리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왔어요. 김준환 형제가 사무간사로 있을 때 그런 친구들이 왔어요. 어느 날 얘기합니다. "목사님 무섭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오면 무섭대. 그런데 저 친구가 해병대 출신이고 얼마나 몸집이 좋습니까? 저 장사가 그 사람들 무서워해요. 그래서 "아니, 이렇게 큰 등치를 가지고 뭘 무서워하냐?" 이러는데 "하! 겁납니다..." 혼자 있기 겁나는 거예요. 그래서 사무원이 여자일 경우에는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교회가 자해를 하여 피 흘리면 무서워할까요, 무서워하지 않을까요? 깡패는 무서워하고 노숙자는 무서워하지만 교회는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 됨이 깨어지고 서로 싸우는 자해의 단계에 들어가면 멸시를 받게 되어 있어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찾아가면 너희의 말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무엇을 알아보겠노라? 능력을 알아보겠노라! 고린도교회가 다투고 분쟁한다면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주님을 섬긴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 교회가 이미 능력을 상실했는데 그 속에서 큰 소리 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면 너희에게서 무엇을 알아보겠노라? 능력을 알아보겠노라...

 

지상에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을 힘써 지킴으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나 되는 것을 힘써 지키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하는 것이에요. 말씀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세워나가면 하나 됨이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 됨이 깨진 교회는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멸시를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욕을 받고 사단을 그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이지요. 교회가 분열하고 교회가 다투고 교회가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은 사단 앞에서 개그콘서트를 여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사단에게는 개그맨이 되는 거예요. 사단은 그런 교회와 성도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우스운지 기뻐하고 박수치고 잘 한다 그러는 것입니다. 사단에게 개그맨 되는 것, 이것은 교회의 사명이 아닙니다. 교회 간판은 걸었으나 거기는 개그콘서트장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교회가 가져야 하는 가장 시급한 교회의 본질을 말씀하는데 이는 교회의 하나 됨, '교회의 통일성'이에요. 교회의 능력은 교회의 하나 됨에서 나옵니다. 교회의 아름다움은 교회의 하나 됨에서 나옵니다. 교회의 온전함은 교회의 하나 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서대신교회가 주께 받은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 됨을 힘써 이루어가는 놀라운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익 힘 문 제]

 

1. 지난주에 배운 말씀을 삶 가운데 어떻게 묵상(적용)하며 살았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2.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징표(표지)와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3. 지상교회(조직교회)가 세워지는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4. 조직교회가 세워지는 원리(법)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러한 원리로 교회가 세워질 때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봅시다.

 

 

 

 

 

5.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통일성'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떤 문제가 나타날까요?

 

 

 

 

 

6. 지상에 있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7.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은혜 받은 내용을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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