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중에 영적인 능력이 사라지는 현상. 능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막히고, 깨달음이 없게 되고, 말씀을 통해 기쁨을 얻지 못한다. 능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아멘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능력의 포괄적인 부분을 알아야 한다. 능력은 은사보다 훨씬 더 크고, 넓다. 그리스도인의 영혼과 삶 모든 것에 걸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을 사모해야 한다. 능력이 없어서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나지 않고, 말씀에서 힘을 얻지 못하고, 기도해도 기도에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서 주님 주신 사명이 부담스럽고, 능력이 없어서 어떤 사람 때문에 섬기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미가서 3장에서 미가 선지자가 선지자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그 앞에 놓여진 과제는 어려운 것이었다.
1절 야곱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통치자들아 들으라.
이들은 사회의 지도자 정도가 아니라 실제 권력을 가진 권력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권력자들은 지금보다 훨씬더 백성들의 삶에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5절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들은.... 선지자들을 향해서 잘못하고 있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선지자들이 있을까? 예레미야의 예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선지자들에게는 하나님께로 부터 오시는 말씀이 그쳤음을 오늘 말씀이 말하고 있다. 자기의 욕심에 따라, 정욕에 따라 자기 입에 좋은 것을 물려주는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하고, 자기를 대접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 자기의 욕심을 따라 이미 알려져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적으로 들려주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자기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했다. 이런 상화에서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권능이 임했다.
8절 오직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져서 야곱과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능력이 없으면 그들 앞에 설 수 없다. 괜히 말하면 자신이 손해 보고, 백명의 선지자들이 소리치고 달려들면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는 그 일을 해냈다.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능력과 정의와 용기로 충만해 졌다. 그래서 그들의 죄를 전했다. 미가 선지자의 사역의 비밀이 바로 이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말씀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 졌다. 이것이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비밀이며, 그리스도인의 비밀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권능으로 충만해 진 사람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게 문제이다.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할까?
그리스도와 연합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요 15장에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하셨다. 무엇이든지 원하는데로 구하라.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인데, 그리스도로 부터 끊어져 있다. 한때는 풍성한 생명의 수액이 그 줄기를 통해서 흘러오고 있었고, 끊임없이 공급받고 푸른 잎을 내고 포도송이를 맺혔다. 그런데 이 포도송이가 자라기 전에 말라 비틀어져 버린것이다.
왜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고 하는데 왜 우리는 능력있게 살지 못할까? 우리는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부터 능력이 역사해야 하는데 왜 역사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와 끊어졌기 때문이다. 존재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가? 죄를 포기하라. 뉘우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포기하고 버리라는 것이다. 뉘우치기는 하는데, 버리지는 않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직면한 상황이다. 버리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뉘우치지만 교회 문밖을 나설 때에는 다시 찾아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현재 처하고 있는 영적 무능이다. 영적 무능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죄라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붙들고 포기하지 못한다. 이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 능력을 가질 수 없다. 죄를 포기하는것.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시편에서 말씀한다. 마음의 가책을 받고 뉘우치는 것을 회개로 생각하는데, 그런데 뉘우치는 것이 회개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회개의 문앞에 서 있는 상태이다. 아직 회개의 문이 열린 것은 아니다. 회개의 문이 열리면 양심의 가책과 뉘우침이 아닌 통회라는 자리로 나간다. 통회와 겸비와, 완전히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자리까지 나간다. 그러면서 다시는 그 죄를 찾아올 엄두를 못낼 만큼 그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이루어지면서 죄를 포기하는 자리까지 나아간다.
죄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와 동일화 되어 있는 것인데 이것을 버리면 자신의 자만심, 자기 체면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는 능력을 소망해도 능력을 받지 못함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결된 마음 속에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깊히 받아들이고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갈망으로 채워지면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와 얽혀 있는 자아, 자존심, 체면을 포기해야 한다. 내가 뭔데 라고 하는 의식, 자존감, 자아의 부분을 포기해야 참되게 굴복하고 버리는 자리에 까지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얇은 뉘우침과 가책 정도에서 끝나는가? 왜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는지를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한다. 진정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신다면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과 인도하심에 역사하기 시작한다. 자기를 포기하라. 주의 능력을 힘있기를 바라라. 그럴 때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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