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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바울의 성령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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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성령 이해

(고신대 송영목 교수님 글입니다.)

 

 

신약 학자들은 점차로 바울의 선포 중에서 성령이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에 관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하지만 바울의 신학을 다룸에 있어서 성령을 따로 다루지 않는 경향이 여전히 있다 (. 리덜보스, 조지 레드). 아마 이유는 성령의 사역이 기독론과 시대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다루는 종말론 그리고 교회론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성화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바울은 주로 교회를 위한 3위의 조화로운 협동 사역적인 관점에서 성령을 언급한다(바울 서신의 3 1 구절들: 8:3-4, 15-17; 고전 1:4-7; 2:4-5, 12; 6:11, 19-20; 고후 1:21-22; 13:13; 3:1-5; 1:17; 2:18, 20-22; 3:3; 3:16; 살전 1:4-5; 살후 2:13). 칼빈이 그러하듯이 바울은 훨씬 이전에 '성령의 신학자'였다. 바리새인으로서의 바울이 공생애 중의 예수님을 만났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바울은 교회를 잔해하던 자였기에, 예수님에 대해서 초대교회가 믿고 선포한 바를 듣고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케리그마를 이단적이며 신성모독적인 것으로 거부했다. 다메섹사건을 통하여 케리그마를 수용하여 신앙하게 되었고, 이전의 바레새적인 지식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속에서 재해석할 있었다. 바울의 성령 이해 역시 다메섹 사건에서 결정적인 정립을 보았다고 있다. 물론 선교와 사역을 통하여 바울의 성령론이 더욱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이유는 없다. 바울은 성도와 성령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간파했다.

 

 

 

1. 사람이 회심할 이미 종말론적인 성령을 받은 자가 된다.

 

바울은 성령을 종말론적인 은사라고 본다 ( 3:14; 1:13). 4:4-6절에서 그리스도와 성령은 종말을 역사에 가지고 들어오신 분으로 묘사한다. 성자와 성령의 오심이 종말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역사를 '때의 충만' 종말로 치닫게 하신 사건이 바로 성자와 성령의 오심이라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성자와 성령은 역사의 전환을 가져오시는 주인공이시다. 바울은 아오리스트 동사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종말론적인 성령을 성도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오순절에 부어진 바로 성령을 바울 서신의 수신자들에게도 주셨다는 것이다 (참고 5:5; 고후 1:22; 5:5). 8:15, 고전 2:12; 3:2절은 성도가 됨은 하나님으로부터 종말론적인 성령을 받음으로부터 시작함을 밝힌다. 구절들에서 바울은 성도가 되는 것과 성령받음을 분리시키지 않고 일치시킨다. 8:9절의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지 못한 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씀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1:13절에서도 "진리의 말씀 복음을 듣고 믿었을 때에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게 되었다" 말씀한다. 고전 6:11절은 3중의 아오리스트 (신적) 수동태 동사를 사용하여 성령께서 크리스챤이 사람을 씻기시고, 거룩케 하시고, 의롭게 하심을 강조한다. 8:2절은 성령의 사역은 죄와 율법 아래에 있던 죄인을 성령의 지배 아래로 옮기는 분이심을 밝힌다.

 

 

2. 성도가 한번 받은 성령은 떠나지 않고 임마누엘하신다.

 

바울은 성령이 성도 안에서 지속적으로 역사하심을 현재형 동사를 통해서 설명한다 ( 8:9, 11, 23; 고전 3:16; 딤후 1:14). 성령은 거주만 하시는 정적인 분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8:14절은 성령께서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들임을 밝히시고, 16절에서는 성령이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고, 26절에서는 성령께서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간구하시며, 27절에서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밝힌다. 성도가 성화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다 ( 15:16). 성령은 우리 안에 소망을 계속 불러 일으키신다 ( 5:5).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은 성도의 존재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성도의 삶의 근원이다. 성도가 성령의 존재로 불리 있다면, 성도의 삶은 또한 성령의 이끄심을 받는 삶이다. 또한 바로 성령을 통하여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이 계속 주어진다 (고전 12:7). 성령의 은사는 성도 안에서 성령이 역사하고 계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도는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져야 하고, 성령의 통제하에 있는 상태인 성령의 충만을 사모해야 한다 ( 5:18, 현재 수동태 명령형).

 

 

3. 신앙고백: 성령받은 증거

 

8:15절과 4:6절에서 성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있는 것은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고전 12:32절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없다고 밝힌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질 없고, 더욱이 바른 신앙고백의 자리에 이를 없다. 물론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도 성령이 성도 안에서 현재적으로 역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바울은 결정적인 성령의 내주와 역사하심의 시금석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참된 신앙고백에서 찾는다.

 

 

4. 모든 성도는 성령을 받았다.

 

성령의 역사와 은사는 개인에 따라 강도가 다를 있다 (고전 12:12). 그러나 성도는 질적으로 차이 나는 성령이 아니라 같은 성령을 받았다. 고전 12:1-13절에서 바울은 6번이나 고린도 교회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똑같은 성령을 받았음을 강조한다 (12:4, 8, 9, 9, 9, 11). 그리고 3번이나 ' 성령' 받았음을 강조한다 (12:11, 13, 13). 동일한 성령을 모든 성도가 받았다는 것은 성도에게 주어진 다양한 은사는 개인의 자랑의 근거가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과 발전을 위해 주어진 것임을 교훈한다.

 

 

5. 성령: 율법과 대조되는 시대를 여는 종말론적인 은사

 

바울은 구약에도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 7:4; 고전 10:3, 4; 4:29; 딤전 4:1). 하지만 바울은 비록 본질상 동일한 성령이시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는 구약과는 다른 차원의 성령의 오심과 사역이 있음을 강조한다. 성령을 통하여 미래가 현재에 침투하였으며, 종말이 이미 세대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신약에 나타난 종말론적인 성령을 '약속된 성령' ( 3:14; 1:13), ' 열매' ( 8:23), '담보물-보증' (고후 1:22; 5:5; 1:14) 등으로 부른다. 특별히 바울은 종말론적인 은사이신 성령을 시대를 대변하는 율법과 대조한다. 고후 3장에서 바울은 율법과 성령, 언약과 언약, 모세의 사역과 자신의 사역을 대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율법과 모세의 사역시대를 대체하는 성령과 자신의 사역의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으며, 한편으로 전자에 대한 후자의 비교할 없는 영광스러움과 항구성을 강조한다. 시대를 대변하는 율법과 시대를 대변하는 성령의 이와 같은 구원역사적인 대조는 3:2절과 5 그리고 2:29절과 7:6 8장에서도 계속 나타난다. 8:11절에 의하면 성령은 성도의 궁극적인 종말인 부활까지 보증하고 계신다. 시대 (new aeon) 영인 성령에 의해 갱신, 변혁 그리고 재창조된 모든 것은 시대의 것과 비교해 새롭고 다른데, 이유는 모든 안에 종말론적인 새로움 (eschatological newness) 담고 있기 때문이다.

 

 

6. 성령: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예수님은 성령을 자신의 영으로서 자신의 사역을 위해 보내시고 성령을 통해서 일하신다 ( 2:33). 성령께서 부활하신 주님의 사역을 대신한다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론적인 성령 이해' 바울 서신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사상이다 ( 1:3-4). 어떤 면에서 종말론적인 성령은 부활의 주님과 함께 그리고 오직 주님을 위해 일하신다. 환언하면, 부활의 주님은 그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서 일하시기에, 바울은 성령을 '그리스도의 ' ( 8:9),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 1:19), '그의 아들의 ' ( 4:6),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살려주시는 ' (고전 15:45)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고 ( 8:9), 성령을 소유한 자는 부활의 주님을 소유한 자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또한 성령 안에 있는 자이다. 이처럼 바울은 기독론과 성령론을 기계적으로 예리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성령의 체험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고, 성령의 사역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체험했던 것이다 (참고 고든 , 2001:65). 넓게는 신약의 성령론, 좁게는 바울의 성령론이 그리스도론적 성령론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교회를 위해 일하시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협동 사역을 놓치고 만다. 이유로 바울의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 그리고 구원론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7. 성령: 성도의 종말론적인 삶의 원천

 

성도는 성령을 소유한 자이므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한다. 삶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살아야 한다. 성도는 윤리적으로 살아야 한다 ( 5:16-23; 5-6). 성령은 법정적이며 구원계시사적으로 중요한 분이실 아니라, 성도가 모든 영역에서 윤리적으로 살도록 역사하시는 삶의 원천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오심으로 역사 안에 오는 세상과 새로운 질서가 침투해 들어와 있지만, 여전히 세상에는 질서가 있다. 그러므로 '이미와 아직 아니' 긴장관계는 성도로 하여금 윤리적이고 사회적이고 우주적인 전쟁터에서 경성하여 살도록 한다. 성령은 성도를 통하여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질서를 심으면서 살도록 독려하신다. 물론 주님의 소위 재림으로 '아직 아니' 측면은 사라질 것이다 (고전 15:24-28). 성도의 삶은 '성령을 따르는 '이며 ( 8:4-6),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사는 '이며, '위엣 것을 추구하는 '이다 ( 3:1-2). 이를 위해 성도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도록 성령의 권고하심을 지속적으로 간절히 소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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