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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성경신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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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 설교. 전체 신학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전체 신학안에서 어떤 가르침인지 말할 수 있는것이 성경신학적 설교이다. 인간중심이거나 실존주의 신학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바르트주의를 가진 성도 역시 많다. 일반 성도들은 신학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교단이 틀리다고 하지만 비슷한 사고와 행동을 한다. 적어도 개혁주의 교회에 다닌다면 하나님의 주권과 그분의 섭리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을 만들어야 한다.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설교를 못하는 것이 많은 문제가 된다. 강해는 하지만….. 어떤 시각으로 성경을 보는가의 문제. 그 사람들이 가진 신학의 차이이다. 교회의 색깔이 어떤 교파에 속해 있는가로 달라져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그렇지 못하다. 그 말은 한국교회의 신학의 부재를 말한다.

 

제네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적어도 이런 정도의 삶은 살아야 한다라는 교범이 기독교강요이다.

 

 

성경신학은 2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역사적 상황에서 보는 것이 있다. 다른 하나는 교회론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그 교회가 세워져 가는 상황에서 메시지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보는 것이다. 모든 메시지는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게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 성경신학적 기독론에서 볼 때, 예수님의 초림을 이사야는 초림과 재림을 같은 사건으로 보고 있다. 수천년의 갭이 있는 다른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이야기 하다가 뒤에는 그분이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Duplication. 중첩. 선지자들이 봤던 하나님 나라, 신약에서 봤던 하나님 나라….. 구약의 사람들은 두 가지를 분리시켜 보지만, 신약 이후에 우리는 초림과 재림을 분리시켜서 볼 수 있게 되었다.

 

Progression 점진성. 계시의 양과 질은 시간이 갈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성경신학의 접근법이 90년대를 기점으로 달라진다. 이전에는 연대기적, 역사적으로 계시의 점진성을 다루었다면, 90년대 이후의 성경신학책들은 성경 각 권별로 다루었다.

 

이신칭의에 대한 두 권의 성경,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접근법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 복음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갔는데, 이방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의 문제, 즉 구약의 방법인 할례와 율법을 지킴에 대한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정의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사도들의 논쟁의 결론은 이방인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되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여준 환상,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음이 결정의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 베드로는 이방인 전도를 적극적으로 나가게 되었다. 사도바울의 1차 전도여행, 이방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나 하는 문제가 다시 대두됨. 율법을 지키냐 안지키냐의 문제(할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느냐의 문제.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바울이 보고를 하게 되었고, 많은 논의들이 있었을 것이다. 회의의 결과 이방인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 사건이 갈라디아서를 쓰기 전인지 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갈라디아서를 쓴 후일 가능성이 크다. 갈라디아서는 이방인이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방법이 이신칭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것, sola gratia. 아브라함, 이삭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것.

 

성경 신학적 입장에서 보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차이점이 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는 전혀 다르다. 로마서의 저작 이유는 스페인 선교의 전진기지를 위해, 또 하나는 사도 바울이 자기 신학을 제시하기 위해. 로마서 저작은 사도행전에서 언급되어 있는데, 클라우디오 황제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는데, 교회가 비고 이방인들만 남게 되었다. 로마 교회 역시 사도에 의해서 훈련 받았지만 혼합주의의 위험성은 언제든지 교회를 혼란케 할 수 있었다. 20여년 동안을 로마교회를 이끌어 왔던 유대인들이 다 사라지고, 이방인들이 5-7년 가까이 혼자 지내게 되는데, 그들은 신학적인 지식이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로마서에서 볼 때 많은 부분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디오 황제가 죽은 후에 유대인들이 다시 로마로 돌아 갈 수 있게 되었고, 다시 문제가 대두되었는데, 기득권을 가지게 되었던 이방인들과 다시 로마로 돌아간 유대인들 사이에 논쟁과 문제가 생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신학적 논쟁으로도 번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본질적인 구원문제에 대해서 설명한다.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 죄 용서함을 통해 얻는 은혜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이신칭의이다. 로마서는 모든 인간이 범죄하여 죽을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을 설명한다면 갈라디아서는 구원의 방편으로서의 이신칭의로 접근하고 있다.

 

성경신학은 그 교회가 어떤 상황속에서 그런 메시지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출발점으로 1990년 대 이후로 연구 방법이 바뀌게 되었다. 마태의 기독론, 마태 공동체 등으로 구체적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마가복음의 기독론 - 메시야 비밀, 인자로 바꾸어 부르게 함. 유대인들의 왜곡된 메시야 대망 사상 때문에 예수님은 그렇게 부르도록 하셨다. 마태복음은 하늘 나라에 대한 신학. 마태가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세계관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장소이다. 같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용어가 각 성경마다 틀리다. 교회론 역시 마찬가지다. 마태와 마가 요한이 틀리다. 요한은 가족 개념으로 교회를 사용하고 있다. 독자, 저자,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성경신학의 접근법이 달라지게 된다. 패러다임 쉬프트.

 

성경신학의 출발점은 종교개혁으로 볼 수 있다. 성경에 관심을 가진 것이 종교개혁이었다. 경건주의를 거치고, 비평, 종교사학, 양식사, 신정통주의, 편집비평의 등장으로 성경신학이 다른 방향으로 가버렸다. 비평학이 하나의 성경 신학으로 이해를 하게 되었고, 바우어와 브레데를 거치면서 …..

 

성경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다른 그룹이 또한 이어지기도 했다. 1990년대 까지 성경신학이 이어졌다. 역사비평에 반발해서 신학에 대한 문제들이 나오게 되는데, Form criticism에 대한 새로운 방법으로 수사학으로 연구하게 되고, 각 권별로 다루어지게 된다.

 

1770-1880까지 Jesus Quest 예수 찾기 운동이 일어난다. 성경의 무오성 역시 깨어졌다. 종교사학이 나오면서 기독교란 종교는 인간(바울, 제자들)이 만든 종교라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원래의 인간 예수를 찾는 연구가 바로 Jesus Quest이다. 신인 예수는 없다가 이들의 결론이었다. 윤리선생으로서의 예수.

 

 

 

 

신약성경은 무엇을 하기 위해 썼는가? 신약성경은 신학을 쓰고 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에 나온 예수님은 신학화된 예수님이다. 유대인의 족보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시작하여 다윗 언약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으로 그렸다. 누가는 헬라의 영웅적 그림으로 그렸다. 마가는 종으로 오신 예수님을 그리고 있다. 요한복음은 인간에게서 출생한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한다. 왕으로 오셔서 왕으로 등극함을 그리고 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저자의 신학이다. 신학의 눈이 없이 하나님의 계시적 측면 없이 본다면 인간 예수만 나오게 된다.

 

 

신약성경은 독자의 독특한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서 기록하였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같은 예수님을 다루지만 예수님이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교회론적 상황에서 그 교회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신약은 당시의 사회, 문화, 역사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승천 40년 후에 기록되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상황 때문에 기록된 것임을 엿볼 수 있다. 교회가 설립되고 40년이 지나서야 복음서들이 기록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기록되어졌다. 그리고 신약성경은 교회에게 기록된 성격을 가진다.

 

신약성경의 성격.

신약시대의 계시 기간은 90년 정도이다. (구약이 1100년 정도라면) 100년 정도 만에 계시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한다. 기록계시와 해석 계시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성경이 기록되면서 동시에 해석되어진다. 계시의 연대를 적게 잡으면 50년, 넓게 잡으면 100년이다.

 

계시 자체가 살았던 시기는 예수님께서 계셨을 때. 예수님 승천 후 40년 동안 교회의 구전 전승기간을 거쳤다. 사도행전은 구전(해석)설교가 나온다. 구약을 인용하고, 예수님이 전해주신 것을 전달해 주었다. 마태, 마가복음이 기록되어지기 전까지 교회는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설교가 전해졌다. 그러다가 중요한 핵심들이 드러나게 되었고, 구원, 종말, 하나님 나라, 이신칭의, 기독론 문제들이 다양하게 나오게 된다. 그 중에 일부들을 기록한 것들이 바울 서신들이다. 예수님의 생애가 50년 정도 구전되었고, 기록되었던 것은 40년 정도일 것이다. 개혁 교단에서는 구전전승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Q문서, 도마…. 등등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구전 전승에 대해서 부인하지는 않는다.

 

첫번째 단계 :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서, 후서, 로마서 6권의 성경이 쓰여짐. AD60년 후에 복음서가 기록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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