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학과 성경자료

구원론_구원의 서정 ordo salutis

반응형

구원론_구원의 서정

   

1. 구원의 서정 (Ordo Salutis)

-> 구원의 측면(다이아몬드의 여러 면이 있듯이 하나의 구원이 여러 측면을 가지고 있음. 그러나 순서에 너무 집착을 가지지 않아야 하며, 이것은 시간적 순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논리적인 순서일 뿐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시간적 순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가. 의미

한 개인 안에 일어나는 구원의 사건을 단계로 나누어 생각하는 것.

   

나. 일반적 순서

소명(부르심), 중생, 회개, 믿음(신앙), 칭의(수양; 양자됨), 성화, 견인, 영화(주님 오실 때 일어남)

   

Cf. 알미니안주의 구원의 순서 - 소명, 회개, 믿음, 칭의, 중생, 견인 (중생의 위치가 다름. 칭의 역시 우리와 약간은 다름.)

  • 넓은 의미(알미니안)의 중생과 좁은 의미의 중생(개혁파)의 차이점에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게 됨. 하나님의 쪽에서 먼저 우리를 죽음에서 살려내는 생명의 역사가 있은 후에 인간이 반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알미니안과 차이가 발생함.

   

   

2. 부르심과 중생

가. 부르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을 받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부르시는 행위(벌콥)

   

개혁파에서는 효력 있는 부르심과 일반적 부르심 둘 다 인정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첫 번째 것은 인정하지 않고 외적 부르심만 인정하고 있다.

   

1) 효력 있는 부르심 (Effectual calling, 내적 부르심)

효력 있는 = 그 일이 꼭 이루어지게 하는

반드시 구원을 이루는 부르심.

개인적 부르심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음.

하나님의 선택적 부르심.

   

a) 정의 - 우리로 하여금 복음 초청에 대해 '예'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이다.

   

b) 용어

두 종류의 부르심에 대해 알미니안 신학자들은 칼빈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라 말함.

적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성경에서 죄인을 부르실 때, 부르심이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 (칼레오, 클레시스, 클레토스) 내적부르심과 관련된 성경의 표현들이 많다는 것이다.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했을 때 그 부르심에 응답하거나 안 하는 전반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부르심에 응해서 구원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전 1:23-24, 롬 8:28-30,

   

c) 논점

   

   

2) 일반적 부르심 (외적 부르심)

'아무나 오라'

   

a) 용어

   

b) 성경구절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물로 나아오되 …. " 복음의 초청

겔 18:23, 33:11 하나님께서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악인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

마 23:37 돌이켜서 구원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시지만 너희가 반응하지 않았다는 말씀

벧후 3:9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c) 논점 : 진실한 부르심인가?

개혁 : 진실한 부르심이다.

두 가지 다 인정한다.

   

* 일반적 부르심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사람들 : 헤르만 훅스마(네덜란드 신학자), Hyper Calvinist(17세기 영국 비국교도 중)

   

   

   

나. 중생 (regeneration)

Being born again

   

1) 넓은 의미의 중생과 좁은 의미의 중생

개혁파가 아닌 사람들은 좁은 의미의 중생을 인정 안함.

   

   

   

   

2) 논점 : 좁은 의미의 중생에 대한 근거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인정한다면 (부분적인 부패가 아닌)

Total 범위와 정도. 이런 상황에서 생명의 역사가 본인에게서 시작될 수 있겠는가?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기에는 완전히 타락 부패하였다.

   

롬 3:10 철저한 인간의 타락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 렘 17:9 "만물보다 심히 후패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엡 2:1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이 살리셨다

   

요 3:3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 먼저 거듭나야 함.

   

성경에서 중생을 말하는 대부분의 주어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을 되어 있음.

하나님께로서 난 자.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다. 요한이 많이 쓴 표현들.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님.

   

요한일서 3:29, 4:1 5:4, 5:18

행 16:4 루디아,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마음을 청종케 하심. 스스로 반응한게 아님.

   

딛 3:5, 벧전 1:3

   

3) 새 생명의 원리

벌콥 : 좁은 의미의 중생 : 인간 속에 새로운 영적 생명의 원리를 심어 주어, 영혼의 지배적인 성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사역

   

C.H. 맥킨토시

복음은 인간 본성을 더 낫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본성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새 옷을 걸치는 것. 성경에서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말라죽는 풀과 같은 것. 성경은 육체에 대해 개성해야할 대상이 아닌, "죽은" 것으로 여기라 말씀함. 그렇다면 거듭남이란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생명이 나누어지며, 새로운 본성이 심겨져 새로운 사람이 형성되는 것. 그러나 거듭난다고 해서 옛 본성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에 없던 새 본성이 우리 안에 태어나는 것이다.

   

4) 효력 있는 부르심과의 관계

   

   

   

   

3. 회개와 믿음

  • 회심(Conversion) : 회개 (repentance) + 믿음 (faith)

       

    행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중생에 있어서 전적인 하나님의 일인데, 회개와 믿음은 사람의 일인가? 이런 논란이 개혁파 안에 있다.

    칼빈주의적 경향성이 강한 사람들은 회개와 믿음을 말할 때 이것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로 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회개와 믿음은 전적으로 인간의 일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 인간이 하는 일도 인정해야 한다. 성경의 용례들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회개를 일으키시지만 인간의 반응도 있는 것이다.

       

    현대의 복음 전도가 너무 인간중심적으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 진실한 회개를 먼저 맺기 보다, 믿음을 먼저 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가. 회개 (repentance)

1) 정의

  • 죄인의 의식 영역에서 일어나는 죄로부터 멀어지는 변화(벌콥)
  • 중생한 사람이 온전한 삶의 변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고와 감정과 의지를 반영하면서, 죄로부터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는 의식적인 돌아섬(후쿠마)

       

    Cf. 반복적 회개 : 계 2:5, 16, 고후 7:9-10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회개가 일생동안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신자들이 해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 칼빈의 회개는 성화의 내용과 관련이 깊다.

       

       

2) 회개의 세 요소 (시험 나올 수도 있음 : "설명하라")

a) 지적 요소 : 생각의 변화, 곧 과거의 생활이 죄와 오염과 절망을 안고 있는 죄의 생활이었음을 인식하는 것.

   

b) 감정적 요소 : 감정의 변화, 곧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반역하여 범한 죄에 대하여 슬퍼하는 것. (느낌)

   

c) 의지적 요소 : 목적의 변화, 곧 죄에서 떠나는 내적 전환, 죄의 용서와 정화를 추구하는 성향. (원함, 결정, 행동)

회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행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26: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3) 로마 카톨릭 교회의 회개 : penance (고해성사) ~ 회개의 절차화, 의식화(형식화)

a) 통회(Contrition)

b) 고백(confession)

c) 사죄선언(absolution)

d) 보속(satisfaction)

   

   

   

   

   

나. 믿음 (신앙, faith)

   

1) 정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일으켜진 바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실한 신뢰

   

Cf. 일반적 신앙 : 하나님의 인격과 그의 계시의 말씀 전체에 대한 굳은 신뢰

   

   

2) 믿음의 세 요소 : 믿음의 대상과 내용에 대한 적극적 동의

a) 지식 (knowledge)

   

b) 동의 (assent)

   

c) 신뢰 (trust)

   

   

3) 믿음과 확신

가) 구원의 확신(assurance) : 내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들어 왔는가? 내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처음 확실하게 들어 왔는가를 확인하는 것)

   

Cf.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 내가 끝까지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나? (이미 들어온 것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나) 확신은 가질 수 있고, 확신을 갖도록 격려하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다.

   

Q.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반론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a) 요일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b) 신약 성경에서 교회 성도들을 향해 사용한 담대한 표현들

   

  •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벧전 1:1-3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c)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확신을 주신다.

  •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d) 구원이 행위에 근거를 둔다면 확신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의 근거가 행위가 아닌 믿음임을 분명히 가르친다.

   

행 16:30-31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엡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다) 그러나 굳이 억지 확신을 넣어 주려고 할 필요 없다.

  • 성령의 내적 확신이 중요

       

       

라) 확신이 구원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 칼빈

a) 하나님은 선하시며 호의로우신 아버지로 그분의 관대함에 근거하여 모든 것들을 약속하시는 분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신적 복의 약속들을 의지하면서 구원에 대하여 의심 없이 기대하는 그런 자만이 참된 신자이다. 단언하노니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며 마귀와 사망을 확실히 물리치는 자 외에는 신자가 아니다. (기독교강요)

   

b) 우리가 믿음은 확실해야 된다고 가르치지만 의심이 전혀 없는 그런 확신이나 걱정이 전혀 엄습하지 않는 그런 믿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신자란 자신의 불신과 함께 끝없이 갈등하는 자라고 말할 수 없다.(기독교강요)

   

   

   

   

   

   

4.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

   

가. 정의

  • 칭의 :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 행위.

       

    법정적 칭의(Forensic Justification) 무죄라고 선언이 되는 것.

    의롭게 됨이라는 용어 사용보다는 의롭다 하심으로 사용하는게 더 좋음. 의롭게 된 것이 아닌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 성화: 죄인을 죄의 부패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로우시며 계속적인 사역.

       

       

       

   

나. 칭의와 성화의 비교

칭의

성화

신분의 변화: 의롭다 함을 받음

실제적 삶의 변화 : 거룩하게 변화되어 감

죄책을 제거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영원한 유산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의 모든 권리를 갖도록 회복시켜 줌

죄의 부패(오염)을 제거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에 부합하도록 갱신시킴

칭의는 단 한번만 일어난다. 그것은 반복되지 않으며, 또한 한 과정도 아니다. 칭의는 즉시로, 또는 영원히 완성된다.

성화는 이 세상에서는 완성되지 않는, 한 연속적인 과정이다.

롬 3:24,26,30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히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살전 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 죄책(guilt)과 부패(corruption) - 시험 나올수 있음.

    죄책은 법을 어기고 잘못해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상태이다. 법-형벌

    부패는 죄를 짓는 주체가 죄로 인해 오염되어 있는 상태. (그 본성이나 성품에 있어서의 오염)

       

   

   

   

   

다. 칭의와 선행

   

둘 다를 정확하게 붙드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이고, 유지하는 것이 좀더 정확하다.

1) 우리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2) 동시에 믿음은 행위와 분리된 믿음이 아니다.

   

믿음의 3요소 - 지식, 동의, 신뢰(신뢰는 의지적인 측면이다. 의지는 원함, 결정, 실천과 관련된 요소임)

믿음은 이론적 믿음이 아니며, 행위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 약 2:26, 2:22 야고보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전제로 하면서 24절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야고보가 말한 것이다.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종교개혁자들 역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많이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로마카톨릭과의 대치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성경적인 교리를 되찾아 와야 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수정해야 했기에 이것을 더 강조해서 말한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렇다고 해서 종교개혁자들이 행위와 분리되지 않은 믿음을 강조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 칼빈

  • 사람들은 행위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지 않으며 행위는 구원을 얻는데 아무런 공로를 세우지 못한다.
  • 만일 행위가 장려되고 강화된다면 그들(교황주의자들)은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왜냐하면 우리는 선행이 없는 믿음이나 선행이 없이 성립하는 칭의는 꿈도 꾸지 않기 때문이다.
  • 이것만이 중요하다. 즉 믿음과 선행은 함께 결합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칭의는 행위가 아닌 믿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 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게 되면 동시에 거룩케 되는 것도 붙잡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기'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의롭다고 하시면 동시에 그는 거룩하게 된다. 이러한 은혜들은 영원히 풀 수 없는 끈으로 함께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의 지혜로 조명하시는 자들을 구속하시며 그가 구속하시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가 의롭다 하시는 자들을 거룩케 하신다.
  • 따라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행위가 없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님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 루터

  • 믿는다고 하지만 삶의 개선 혹은 선행이 뒤따르지 않는 것을 저들은 보기도 하고, 동시에 또한 믿음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듣고 말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오류에 빠져서 "믿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의로워지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선행을 해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인해 저들은 복음에 대해 들을 때 지나치게 나아가서, 마음 속에서 "내가 믿는"라고 하는 것의 개념을 스스로의 힘으로 꾸며 내게 된다. 저들이 참된 믿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류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심연에 결코 이를 수 없는 인간적 상상과 관념일 뿐이며, 아무 것도 산출해 낼 수 없고 어떠한 개선도 이를 뒤따라 나오지 않는다. 반면, 믿음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이 믿음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태어나도록 만든다. 그것은 옛 아담을 죽이고, 마음과 정신과 지성과 능력에 있어서 우리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며 우리에게 성령을 가져다 준다. 오, 믿음, 이 믿음이 끊임없이 선행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믿음은 해야 할 선행이 있는가 없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것을 묻기 전에 믿음은 이미 선행을 행했고, 또 항상 행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서문)

   

   

새관점은 이신칭의에 대한 현대의 신학 논쟁.

새관점은 1세기의 유대교는 우리가 해석해 온 것처럼 율법주의와 바울의 이신칭의의 대결구도가 아니었고, 율법주의가 언약적 율법주의로서 상당히 의적인 측면이 강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대결 구도를 깨야 한다. 바울이 주장했던 이신칭의는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이신칭의가 아니었다. 바울 역시 1세기 유대교 상황을 바르게 파악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결국 새관점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와 마찬가지이다.

   

세관점에 대한 비판들

과연 1세기 유대교의 해석이 공정했는가? 학자들의 비판을 많이 받고 있음.

복음주의에서 제기하는 비판은 왜 이신칭의를 말하는 본문은 놓아두고 1세기 유대교 문헌들을 가지고 논하고 있는가?

   

이신칭의의 본문 중에서….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삶과 행위로 되어진 것이 아님)

   

오늘날의 개혁파의 경우에도 이신칭의만 강조하다보면 믿음의 올바른 균형을 잃어 버리게 된다. 그래서 신자들의 삶에도 문제가 생겨 행위에 대해서는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다. 바른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양 측면의 균형적인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5. 견인(perseverance)

가. 정의

  • 신자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속하며, 마침내 그것을 완성케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인 사역.

       

    나. 성경적 근거

       

  •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요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엡 4:30( = 엡 1:13-14)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 고전 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 (고후 1:21-22) - 성령의 인치심, 보증으로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

   

다. 강력한 경고(견인을 반대하는 듯한)의 구절들

히 2:1-3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 3:12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하라

   

히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가장 강력)히 6:4-8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 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벧후 2:20-21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칼빈주의자들은 견인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그것은 애초에 진정한 구원이 아니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존 오웬, 후크마, FF BRUCE

   

<교수님 견해>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견인의 믿음과 경고를 같이 던져주고 계신 것으로 우리가 받아야 한다. 견인의 믿음을 주시면서도 경고의 말씀을 같이 던져주고 계시다. 율법으로 자유한자, 그러나 율법의 자유로 심판받을 자처럼 행해야 함. 단단한 견인의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주님의 경고도 같이 취해야 함.

   

   

   

   

라. 그 외 생각해 볼 구절들

  • 고전 5:1-5 사단에게 내어 줌, 육신은 멸함, 영은 구원
  • 고전 3:12-15 해를 받음, 불 가운데서의 구원
  • 딤전 1:19-20 믿음의 파선, 사단에게 내어 줌
  •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감. 딤후 4장
  • 딤후 2:17-18
  • 고전 9:27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를 사용하지 않으시는 버림.

       

       

       

       

       

마. 결론

  • 믿음 안에 거하고 불안해 하지 말라 + 그러나 두려움과 깨어있음으로

    <견인> <경고>

    빌 1:6 빌 2:12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히 6: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앞 절에서는 견인을 부인하는 것처럼 강력하게 말하지만 9절에서는 마치 견인과 같은 말씀을 하고 있음.)

       

   

   

제 4장 성화와 관련해서 더 고찰해 볼 문제들

   

   

1. 결정적(즉각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

   

1) 일반적 관점과 새로운 시각

칭의는 즉각적으로 일어남. 성화는 점진적 측면이 있음. 그런데 개혁주의에서 성화가 즉각적인 측면도 있다고 봄.

   

2) 전통적 신학에서의 (유사한) 사례

   

3) 성경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was sanctified)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롬 6:1-7:6 죄에 대해 이미 죽음.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행 20: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4) 칭의와 결정적(즉각적) 성화의 비교

칭의의 성경적 표현 - 의 죄 사함 용서(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이미 이루어진 일임을 부각)

성화의 성경적 표현 - 죄 씻음, 정결케 됨, 거룩(현재완료 시제를 사용하여 이미 이루어진 일임을 부각)

   

   

5) 주목할 현대 학자들

칼빈의 경우도 즉각적인 성화의 측면에 대한 흔적이 있음. 존 머레이의 경우 즉각적 성화라는 용어를 사용함. 안토니 후크마의 경우도 즉각적인 성화에 대해서 이야기 함.

   

이미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것이 즉각적 성화의 측면임.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미 죽게 만드셨기 때문에 (already not yet)

   

   

* 죄와의 결정적 단절 (머레이)

  • 죄에 대해 죽은 사람은 더 이상 그곳에 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의미에서, 아직도 죄의 영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죽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그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네." 이것이 바로 사도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결정적 갈라짐이다. 그리고 이 갈라짐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바울 사도의 전() 개념이 서 있는 기초가 된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도덕적이고 종교적 관계라는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것은 일상적 죽음의 경험과 다를 바 없이 참으로 그리고 결정적으로 발생하는 갈라짐이요, 단절이요, 이전이다. 죄가 죽음 안에서 그리고 죽음을 향해서 지배하고 있는 영역과의 사이에서 단번에 일어나는, 확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이 있는 것이다.

       

       

    6) 결정적 성화와 점진적 성화의 관계

       

    * 점진적 성화를 위한 역동적 근거가 되는 결정적 성화 (머레이)

    그 결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놓쳐 버렸다. 우리의 윤리는 역동성을 잃었고 우리는 세상을 본받는 자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죄에 대한 죽음이 가져오는 권능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 구속적 해방의 자유가 지나고 있는 철저함을 감당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죄에 대해 죽었다.' 그리스도의 성취의 영광과 기독교 윤리의 보장은 바로 이 교리에 달려 있다.

       

구분

성화의 내용

중요역할

  

즉각적(주체:성령)

점진적(주체:성령+신자)

점짐:신자책임(신자가 하지 않으면..)

부정적

-더러움(부패)을 지우고

- cf. 칭의: 죄책 제거

그리스도의 피

  

성령께서 중생시 단번에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정결케하는 피를 적용함을 통해 이루어짐

죄는 독(cf. 칭의: 하나님과의 관계 영향)

긍정적

깨끗함을 심고 증진(=거룩함의 원리)

Cf. 칭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거룩의 원리

살림(vivi)

거룩(과 순종)의 원리를 심음. 중생시 새생명의 원리와 같음

-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거룩 원리 심겨졌음

이 원리의 증대 및 강화를 통해 이루어짐

거룩의 원리 : 시들고 부패 & 죽음

  

  

  

죽임(morti)

거룩의 원리 심음의 이면에는 =죄의 원리의 결정적 손상이 있음

- 죄의 지배 종결

: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 그와 함께 죄에 대해 죽었음

아직 살아(남아) 있는 죄의 원리를 계속 약화 & 죽이는 작업

남아 있는 죄(의 원리)가 기승

(= 왕좌 재탈환 시도)

  

순서

: 시간적 순서 아닌 논리적(성격적) 순서

   

   

성화의 즉각적 성격: 거룩케 되었으므로 거룩한 삶

: 죄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죄 이기는 삶

   

신자의 책임

: grace + duty

 

 

 

 

2. 성화에 있어서 인간의 책임

   

가. 우리가 안고 있는 혼돈

인정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과 인간의 영역은 완전히 구분하기 힘듦. 하나님의 신비가운데 행하고 계시므로 인간이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음.

   

   

나. 신학자들의 견해

  • 성화는 결국 인간이 하는 인간의 일. 실제적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실 부분없음
  • 성화는 하나님의 일, 여기에 인간이 끼어들 부분은 없기에 우리가 할 일은 없는 셈

   

   

개혁파의 입장

중생에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사실상 없다고 본다. 알미니안에서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할 수 잇는 부분이 있다고 봄.

개혁파에서는 성화에 있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영역과 인간이 하는 부분이 있다고 봄. 협력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한다.

인간이 협력하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Synergism 중생에서 이것을 부인함. (협력)

   

숫자로 표현

하나님 : 인간

100:100 으로 말해야 한다.

   

존 머레이의 말. 대치되는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한다. 상호대치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하면 하나님이 일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면 우리가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님. 엄격한 협력의 관계도 아니다. 그것은 50:50이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일하시고 우리도 일한다. 이 관계는 하나님이 일하시므로 우리가 일하는 관계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