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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마 6:13절 상반절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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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3절 상반절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처음으로 부정적인 간구를 접한다. 이 간구와 관련하여 자연스러운 질문은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으로 인도하는 분이신가? 약 1:13은 아니라고 한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그렇다면 시험 (peirasmon)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복음서에서 시험은 주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바리새인과 같은 예수님의 대적들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행위와 관련된다 (마 41:1; 막 1:13; 눅 4:2; 고전 7:5; 마 16:1; 19:3; 22:28; 막 8:11; 10:2; 눅 11:16 등). 예수님으로 하여금 메시아의 사역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탄의 시험과 유혹과 방해 공작은 나중에는 교회를 향해서도 계속된다. 따라서 복음서 기자들은 비록 그것이 사탄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내면에 유혹을 받게 하여 죄를 범하도록 하는 차원으로는 ‘시험’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마 26:41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주기도문의 간구처럼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주의를 주신다. 이 시험은 사탄에 의한 것으로서 제자들을 향한 시험이다. 따라서 이 시험은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이루기 위해 당하는 외적인 어려움과 핍박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주님께 더욱 헌신하면 할수록 이런 어려움과 시험은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흔적도 더 많아진다 (갈 6:17).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그러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는 무엇인가? 이 간구는 우리가 사탄의 유혹과 핍박을 전혀 만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간구는 아니다. 반대로, 사탄의 시험을 만나더라도 이기도록 해 달라는 간구이다. 예방 차원이 아니라 승리하고 극복하는 차원의 간구이다. 예수님의 사역에 사탄과 대적의 시험은 지속적이었는데, 그 때 마다 피하거나 경험하지 않도록 간구 한 적은 없다. 예수님은 그 시험과 타협하지도 않으셨을 뿐더러 실패하지도 않으셨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계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체험에서 나오는 확신 가운데 기도를 가르치시고 있다. 성도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마귀와 싸울 수밖에 없다.

 

뒤따르는 “다만 (그) 악에서 구하옵소서”는 앞부분과 무슨 연관을 가지며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악’ (tou poneirou)는 무엇인가? Tou라는 정관사를 남성으로 볼 수도 있고 중성으로도 볼 수 있다. 남성으로 본다면 사탄을 가리키며, 중성으로 본다면 그 악 혹은 그 악한 행동을 의미한다. 마 13:19, 막 4:15, 눅 8:12, 요 17:15, 그리고 요일 5:18에서 악한 자는 사탄을 가리킨다 (그리고 엡 6:16; 살후 3:3도 보라). 이 구절들을 통해서 볼 때 '그 악'은 사탄을 가리키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는 부정적인 간구는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라는 긍정형으로 다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즉 주제의 반복을 의미하기에 같은 내용의 다른 양상일 뿐이다. 고후 12:23이하에서 사탄에 의해 고난 당한 바울의 모습을 우리는 본다. 매를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했지만 하나님은 사탄의 손에서 바울을 건지셨고 보호하셨다. 히 11장은 믿음의 선진들 역시 이런 고난을 통과했다고 증언한다. 따라서 우리는 엡 6:10 이하에서 말씀하듯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은 부활로 사탄을 이기셨고 그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지속적인 승리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분의 나라를 확고히 해야 한다. 이것이 이 간구에 나타난 주님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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