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1절의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제 우리는 주기도문의 전반부인 하나님에 대한 청원 (Thou petitions)을 마치고 ‘우리’ 자신에 대한 청원을 다루게 된다 (We petitions). 전반부의 하나님에 대한 청원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관련된 것이다. 후반부에도 3개의 간구가 등장하는데 ‘우리를 위한 양식’, ‘우리의 죄’, 그리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마치 마 6:33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순서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십계명의 1-4계명이 하나님 중심과 관련된 계명에서, 5-10은 수평적인 이웃과의 계명을 다루는 것과도 유사하다.
어떻든 우리와 관련된 간구가 3개나 된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위한 중요한 관심을 보이고 계심을 의미한다. 2차적으로는 물론 나중에 있을 마태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이렇게 3번은 하나님에 대해, 그리고 난 후 3번은 우리에 관한 간구를 하게 하셨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 나라, 그리고 뜻이 예수님의 사역과 인격에서 다 이루어져서,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충만한 은혜와 영광을 누리게 되었고 의롭게 되었고, 부활과 하늘에 앉힘을 누리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직 아니’의 측면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 양식과 범죄에 대한 용서와 시험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미와 아직 아니의 긴장관계는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양식 (arton)은 무슨 의미인가? 좁게 그리고 일차적으로는 빵을 의미하고 넓게 그리고 2차적으로는 삶을 영위하게 하며 생명을 보장하는 제반 양식과 음식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목수의 아들로 가난을 경험했으며, 제자들과의 공동체적 삶에서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 것은 아니었다 (마 12:1-8; 막 6:32-44; 눅 11:5). 사실 예수님 당시의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가난과 투쟁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렇게 예수님께서 빵을 구하는 간구를 가르치신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마 6:4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신 주님이시기에, 과연 물질적인 빵 만을 구하게 하셨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예수님은 영적인 양식도 공급하고 계신다. 이 이유로 마 6:11절의 양식은 육신의 양식뿐 아니라 은혜의 양식도 포함하는 것이라고 넓게 보아도 무방하겠다.
그렇다면 ‘일용할’ (epiousios)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오리겐이 말하듯이 ‘존재 (ousia)를 위해 필수적인’ 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오늘을 위한’이란 뜻인가?
주기도문에서 양식은 ‘오늘 날 우리에게’라는 말과 결부하여 보면, 필수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매일 공급해 주시는 만나와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 양식이 은혜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 이름을 위한 것이다. 미래론적으로는 이 양식은 교회로 하여금 미래적 천국에서 영원히 먹을 만나를 내다보게 한다.
적용해보면 생업과 사업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이 순서가 지켜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복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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