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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마 6:13절 하반절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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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6:13절 하반절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6개의 간구 (청원)가 끝나고 이제 송영 (doxology)으로 주기도문을 마친다. 하지만 송영의 원래의 형태에 대한 사본상의 증거는 논란의 대상이 된다. 본문비평의 외적 증거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고대의 사본 중에서 시내산, B, D, Z, f1, 대부분의 라틴 번역본들, 그리고 주기도문에 대한 주석을 쓴 많은 교부들 (터툴리안, 오리겐, 키프리안, 니사의 그레고리, 어거스틴, 암브로스 등)은 이 송영부분을 생략하고 있다. 송영을 가지고 있는 사본들은 5세기경의 K, W, 그리고 델타 사본 등의 비잔틴 사본계열, 다수의 소문자 사본, 그리고 일부 교부들 (타티안, 크리소스톰 등)이다. 외적 증거로만 보면 이 송영부분이 없는 것이 훨씬 지지를 받는다.

 

내적 증거를 살펴보자. 송영이 없는 본문은 아마 마태의 주기도문 보다 더 오래된 누가의 주기도문에 더 일치하는 것 같다. 눅 11:4에서 주기도문은 마치는데, 송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 송영이 없는 주기도문이 예수님의 원래의 말씀에 일치하고, 송영은 후대 (아마 예루살렘의 예수님의 제자들)에 교회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도록 첨가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의 기도문인 ‘제 18복 기도문’이 매 부분마다 송영으로 끝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가 주기도문을 사용하면서 당대의 유대관습을 따라서 송영과 함께 주기도문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짙게 한다.

다수사본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깜뻔 심학교의 판브럭헌 (Van Bruggen- 최갑종에서 인용됨)은 이 송영 부분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원래의 기도문에 포함되어 있다고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단지 소수의 사본들만이 송영을 생략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다수사본 옹호자들이 사본 숫자의 기계적인 계산을 맹종적으로 의존하는 오류를 볼 수 있다.

 



 

 

판 브럭헌은 계속 말한다: “이것은 동방교회 예배의식에서 사제가 송영을 말하고, 반면에 회중들은 서문과 여섯 청원들, 그리고 아멘을 암송했다는 사실 때문에 일어났을 것이다”. 여기서 좁게는 판브럭헌, 넓게는 다수사본 옹호자들의 역사적인 객관성이 결여된 일방적인 추측을 볼 수 있다.

판 브럭헌의 계속되는 주장이다: “ ... 동방교회 예식과, 그리고 적어도 암브로스때 밀란의 사람들이 사제들이 말하는 일정한 형식의 송영을 알았다는 사실은 송영의 진정성을 보증해 준다. 암브로스 역시 송영이 성경적인 기도 방식에 속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역사적인 신빙성이 결여된 주장인 것은, 예를 들어 암브로스는 송영이 있는 주기도문을 제시하지도 않았으며, 송영이 성경적 본문에 속한다는 주장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암브로스는 그의 책 “성례전에 대하여” 5.4.18에서 분명히 송영이 없는 주기도문을 수록하고 있다. 송영 부분은 주님의 제자들에 의해 사용된 것으로 보이기에 여전히 그 의미가 유효하며 살펴볼 가치가 있다.

 

송영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구약에서도 동일한 주제를 볼 수 있다 (단 7:13-14, 27). 계시록에는 이 주제가 종종 등장한다 (계 1:6; 4:11; 5:12-13; 7:10-12; 11:15). 중요한 것은 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성부하나님만 독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자 예수님도 공유하시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도 공유하게 된다 (눅 12:32; 22:28-29; 계 1:5-6; 5:9-10).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림으로 3개의 하나님을 향한 간구들 (Thou-petitions)로 다시 돌아간다. 주기도문의 결론 부분에 송영이 위치함으로 이 송영은 주기도문 전체와 관련을 맺고 있다. 즉 자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나라가 임하옵시고, 뜻이 하늘과 땅에서 이루어지며, 일용할 양식을 주시며,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않으시며, 악에서 구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송영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가 각 간구를 송영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종말론적으로 다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현재적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아멘 역시 주기도문의 모든 간구들에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의 사적인 기도 그리고 공적인 기도 한 마디 한 마디 역시 하나님을 찬송하는 마음으로 ‘아멘’으로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의미 없는 아멘의 남발은 아멘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주로 기독론적, 성령론적, 종말론적, 그리고 교회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기도이다. 우리의 공적 그리고 사적인 예배와 기도에 더욱 빈번히 주기도가 찬송으로 혹은 대표기도에서 조차 때로는 애용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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