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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성경자료

하나님을 섬기는 삶과 헌상의 기초_마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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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계십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 겉으로 표명하는 것과 속마음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외식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헌상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십일조를 아주 철저하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대하여 "화 있을 찐 저"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헌상의 정신과 어긋나는 십일조

'의'라고 하는 것은 정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정한 방법과 부패한 수단으로 재물을 얻었다면 그가 아무리 십일조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애초에 그것을 십일조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헌금의 정신과 어긋나기 때문이지요. 자기를 하나님 앞에 모두 드리는 것이 헌금의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부정하고 더러운 것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들은 거룩하게 구별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깨끗하고 온전해야 할 터인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에게는 가치 없는 것, 자기에게는 아무 희생도 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고 나서 사람들에게는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마음에 품고

'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비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움을 청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외면치 않고 그 손길을 붙잡아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 도움과 요청을 돌아보지 않고 그저 자기 것을 지키고 키우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하나님께는 회향과 근채와 박하의 십일조까지 계산해서 드린들 하나님께서 그것을 진실 된 것으로 인정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비를 닮아 자비가 있어야 합니다. 자비가 그 마음과 손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냉정해서 자기의 것은 손도 못 대게 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헌물을 드린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인정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의 헌상은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신'이라고 하는 것은 신실함을 버렸다는 이야기지요.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신앙적으로는 아주 반듯한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그들의 마음과 삶속에서는 '의와 인과 신'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시고, 이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허례허식으로는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다

헌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방법의 하나입니다(롬 12:2). 그러므로 헌상에는 우리의 진정이 들어가 있어야 됩니다. 헌상에는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녹아들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재물이 필요해서 헌상을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부가 점이 없고 흠이 없이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한다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이 헌금이라고 하는 형식만 흉내 낸다면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고백과 일치하는 마음과 삶이 헌상의 기초

헌상을 할 때 여러분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셨고 생명의 주인이 되셔서 여러분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고 계신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한 것과 일치하는 마음으로 고백한 것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그의 헌상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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